[023][납량특집] 괴담과 유산 Ⅰ 하나야시키 & 코스모월드 편

2021. 8. 12. 18:14유튜브 원고/혀기네카페의 롤코라떼

[023][납량특집] 괴담과 유산 Ⅰ 하나야시키 & 코스모월드 편 〔8/12〕

 

 

영상으로 보기 :: https://youtu.be/ZZy03qnVJeY

 

아주 화창했던 어느 날의 일본의 오래된 놀이공원, 어트랙션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던 아르바이트생 A군은 지금은 철거된 어느 놀이기구를 홀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 낮 시간이었던지라, A군이 담당하던 놀이기구를 찾는 사람은 없었고 A군도 슬슬 지루하다고 생각하려던 그 순간, 꼬마 손님 한 명이 A군의 놀이기구로 찾아왔습니다. "부모님은 안 계시나요? 혼자 왔어요?" A군이 묻자 꼬마 손님은 그렇다는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해당 놀이기구는 신장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꼬마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키를 재어보니 다행히도 기준을 넘겨 혼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안전장치 확인까지 마친 A군은 그렇게 꼬마 손님 혼자 탑승한 놀이기구를 출발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놀이기구가 출발한 후로 A군의 눈에는 꼬마 손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키가 작아서 다른 구조물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나?", "생각보다 무서워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걸지도 몰라." 놀이기구가 멈춘 후, A군은 꼬마 손님을 달래기 위해 직접 놀이기구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몸이 얼어붙고 말았지요. 놀이기구 안에서 정말로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운행 중에 아이가 놀이기구 밖으로 추락이라도 한 것이라면 이건 정말 큰 사고입니다. A군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그 손님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큰일이다 싶어 윗선에 보고하려 연락을 했는데, A군의 몸은 다시 얼어붙었습니다. "오늘 그쪽으로 간 손님은 없었는데요?", "오늘은 아직 어린이 입장객은 없었어요." 그래도 추락 사고가 난 것에 비하면 훨씬 다행이니 자신이 헛것을 봤나 보다 생각하며 A군은 애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고 A군은 휴게실에서 동료 직원에게 오늘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동료 직원이 하는 말에 A군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료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A군이 입사하기 전 그 놀이기구를 담당했던 직원 한 명이 똑같은 일을 겪은 후 퇴사하였고, 이후 A군이 들어와 해당 놀이기구를 맡게 된 것이라고요. 과연 A군과 선임자가 보았던 아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롤러코스터부터 테마파크까지, 혀기네카페의 롤코라떼입니다. 이번 영상을 포함하여 총 네 차례에 걸쳐, 일본의 오래된 놀이공원에 떠도는 무시무시한 괴담과, 괴담 뒤에 숨겨진 뒷이야기를 알아보는 "괴담과 유산" 특집을 진행합니다. 원래 예고했던 "롤러코스터의 역사" 시리즈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납량특집 괴담과 유산 그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하나야시키'와 '코스모월드'라는 두 개의 놀이공원에 숨겨진 사연을 소개해드립니다. 지금 출발합니다,  It's Coastertime!

 

'하나야시키'의 위치를 지도 위에 나타낸 모습과, 코트야드와도 같은 공원 안에 여러 놀이기구와 정원이 들어선 모습.

일본의 수도인 도쿄도 다이토구(台東区)아사쿠사(浅草)라는 지역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상설 유원지가 있습니다. A군이 근무했던 이 놀이공원은 보통 '하나야시키'(花やしき)라고 일컫고, 지역 주민 사이에서는 더 줄여서 "하나야"(はなや)라는 애칭으로도 불립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아사쿠사 하나야시키'(浅草花やしき)로, 세계대전보다도 전인 1853년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유명 관광지인 센소지와 전통시장 옆에 위치한 하나야시키에는, 마치 서양의 코트야드를 연상시키는 6천 제곱미터가 조금 안 되는 넓이의 공간에, 작은 정원과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이곳이 처음부터 놀이공원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어로 "하나"(花/はな)는 꽃을, "야시키"(屋敷/やしき)는 저택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하나야시키는 꽃이 가득한 정원에서 시작했습니다. 개원 직후인 19세기 초에는 국화와 모란을 중심으로 잘 꾸며진 정원으로 운영되며 도심의 식물원 역할을 했고, 19세기 말부터는 동물을 들이며 동물원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야시키의 마스코트가 판다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야시키는 1941년 처음 유원지로 전향되었고, 1953년 롤러코스터가 설치되며 지금의 놀이공원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일본의 유명 엔터테인먼트 대기업 '반다이남코'(バンダイナム) 그룹 산하의 비상장기업인 '주식회사 하나야시키'가 이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근대식 놀이기구와 건축 사초의 정형을 보여주었던 옛 'Bee 타워'와, 이 공원의 최초의 놀이기구 중 하나인 '회전목마'의 모습.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공원인 만큼 이곳에 있는 많은 놀이기구가 문화재급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2016년 운영 종료 후 철거된 'Bee 타워'(Beeタワー)는 근대 건축 사조와 근대식 오락시설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회전목마'(メリーゴーラウンド)는 하나야시키가 1941년 최초로 설치한 놀이기구 중 한 가지로, 아시아 놀이기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산입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유명한 어트랙션은 '롤러코스터'(ローラーコースター)입니다. 1953년 첫 주행을 시작한 롤러코스터는 일본이 최초로 자국의 기술력으로 만든 롤러코스터이고, 아시아를 통틀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롤러코스터입니다. 약 1분 30초 동안 공원의 안뜰을 한 바퀴 도는데, 최대낙하각은 의외로 가파른 약 40도이고, 하강 구간을 총 5회 지나지만 오래된 기종답게 낙차가 그렇게 크진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60년 넘은 롤러코스터라니 타고나면 디스크가 오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마지막의 급브레이크를 제외하곤 의외로 탑승감이 좋아서 놀랐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유지·보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53년 '롤러코스터'아 처음 운영을 시작했던 당시의 사진과, 운행 60년이 훌쩍 넘은 오늘날까지 운영 중인 모습.

 

옛 귀신의 집 터에 설치된 안내판과, 새로운 귀신의 집으로 향하는 계단에 설치된 토리이.

하나야시키의 또 다른 유산은 바로 '귀신의 집'(お化け屋敷)입니다. 단 지금의 귀신의 집은 2011년 새롭게 문을 연 신규 어트랙션이고, 진짜 명물은 1984년부터 2010년까지 운영되었던 옛 귀신의 집이었습니다. 이 귀신의 집이 유명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도쿄에서 가장 많은 괴담이 떠돌았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옛 귀신의 집이 철거된 자리에 설치된 안내문에 의하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발소리가 들렸다."라거나 "아이가 혼자 들어갔는데 종료할 때까지 나오지 않았고, 내부 검사를 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라고 합니다. 하나야시키에서 직접 소개한 이야기 외에도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거나 분명 혼자 들어갔는데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등 체험객의 무시무시한 증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곳 귀신의 집은 인형과 마네킹만 사용하는데, 체험을 마치고 나온 손님이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가장 무서웠어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라고 말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귀신의 집은 옛 귀신의 집 터의 옆 건물 2층에 마련되어 있고, 옛날 귀신의 집의 바로 맞은편에는 '스릴러 카'(スリラーカー)라는 서양식 귀신의 집이 추가되었습니다. 스릴러 카는 탑승물을 타고 이동하며 관람하는 놀이기구인데, 역시 인형으로만 꾸며진 공간인데 움직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는 등의 다양한 목격담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원의 홍보물과, 입구의 우체통 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마스코트 판다. 하나야시키의 마스코트는 판다인데 오늘날의 하나야시키에는 동물이 없지만 대지진 이전에는 동물원도 마련되어 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하나야시키는 세계대전 이전에 설립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전쟁과 제국주의의 광기를 몸소 겪은 공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23년에는 그 광기가 극에 달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9월 1일, 일본의 수도권인 간토 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합니다. 한 시간 5분 사이에 리히터 규모 7.8, 7.3, 7.2에 최대 진도 ⅩⅠ해당하는 지진이 세 번이나 발생하여 각각 무려 약 5분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이후로도 규모 7.0 이상의 여진이 수차례 발생했습니다. 최고 높이 약 12미터의 거대 쓰나미가 간토 지방의 해안가를 휩쓸었고, 전역에서 대규모의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지진 이후 도쿄는 대화재로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많은 사람이 불을 피해 스미다 강에 뛰어들었다가 불에 타던 자재들이 강의 표면을 덮으며 물의 온도가 끓는점에 도달해 사람들이 익어 죽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참고로 스미다 강은 아사쿠사의 바로 옆을 지나는 하천입니다. 하나야시키는 대지진의 화마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집을 잃은 이들이 모여들며 대피소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난민의 머릿수에 비하면 하나야시키는 너무나 좁았습니다. 하나야시키의 수용력이 한계에 달하자, 사람들은 아주 끔찍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들어갈 자리를 더 만들기 위해,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모두 독살하여 밖에 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하나야시키에서는 사람의 유령을 목격했다는 괴담도 많지만, 갑자기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등 동물과 관련된 기이한 일도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원내에는 동물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고, 여기저기에 조그마한 신사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지진 직후의 아사쿠사의 모습(© Library of Congress)과, 군인과 경찰이 나서서 학살을 자행하던 모습을 담은 사진(© KBS WORLD).

광기의 시대에 아사쿠사에서 희생된 것은 동물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대지진 직후 조선인들이 공동 우물에 독을 타고 약탈과 방화를 일삼고 있다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신문에는 악성 루머를 그대로 받아 적은 페이크 뉴스가 실렸으며, 심지어 일본 내무성도 나서서 잘못된 정보를 하달했습니다. 이를 명목으로 스스로를 방범대라고 칭한 자경단이 나서서 대학살을 일으켰는데,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인이어도 조선인처럼 생긴 사람, 조선풍 옷을 입은 사람, 성씨의 한자가 외자인 사람, 발음이 어눌한 사람을, 몽둥이, 칼과 검, 죽창, 심지어 총기를 사용해 살해하거나 기름을 끼얹어 불태웠고, 이들을 피해 경찰서 등 관공서로 도망친 사람도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 나와 희생 당했습니다. 나중에는 관공서가 범죄를 방관하는 수준을 넘어, 군인, 경찰, 소방대에서 나서서 조직적으로 학살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조선인을 위시한 외국인 뿐 아니라, 본토 사람들과 억양이 다른 류큐인, 아이누족, 도서부 출신자나 도호쿠 및 고신에쓰 출신자까지 살해당했으니, 그야말로 광기에 찬 마구잡이식 학살이었습니다.

 

거장 감독 故 '구로사와 아키라'(© 映画の友)와, 유명 작가 부부 故 '쓰무라 세츠코'와 故 '요시무라 아키라'(© P+D MAGAZINE.).
반제국주의자이자 일본에 보통선거의 개념을 소개한 도쿄대 교수 故 '요시노 사쿠조'(© Yoshino Sakuzo Memorial Museum)와,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荒木経惟).

이후 일본의 몇몇 지식인은 이때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대표적인 우익사상가였던 일본군 장교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 好古)도 이 사태를 비판할 정도였습니다. 《라쇼몽》(羅生門),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거미 숲의 성》(蜘蛛巣城) 등 일본의 걸작 고전 영화를 감독했으며, 베니스, 베를린, 깐느 영화제,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모두에서 수상한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黒澤 明)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 두 눈과 귀로 직접 목격했던 대학살 당시의 광기를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아버지도 당시 수염을 기르는 게 조선인 같다는 이유로 살해당할 뻔했다고 합니다.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 다자이오사무 상 등 일본 문학계 유수의 상을 받으며 인정받은 《파옥》(破獄), 《가석방》(仮釈放) 등의 작가  '요시무라 아키라'(吉村 昭)는, 그의 소설 《간토대지진》(関東大震災)에서 대학살의 참상과 학살을 유도한 유언비어를 심도 있게 다루며 키쿠치칸 상을 수상하였고, 아내 '쓰무라 세츠코'(津村 節子)와 함께 눈을 감을 때까지 이 일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해변의 카프카》(海辺のカフカ)《1Q84》 등 수많은 걸작을 쓴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 春樹)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 배타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경고하며 선례로 간토 대학살을 언급했습니다. 또한 반(反)제국주의자로 보통선거의 개념을 널리 알린 도쿄대 교수 출신의 '요시노 사쿠조'(吉野 作造)는 1만4천747명의 희생자의 명단을 정리하여 문서로 남겼습니다. 요시노 사쿠조의 기록에 따르면 '아사쿠사 공원'(浅草公園)에서도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는데, 아사쿠사 공원은 현재의 센소지(浅草寺)가 있는 곳으로 하나야시키의 바로 길 건너편입니다. 또한 학살이 극에 달했을 때는 앞서 언급한 하나야시키 바로 옆의 스미다 강이 핏빛으로 물들었다고도 전해집니다.

 

'하나야시키'와 '코스모월드'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와, 코스모월드의 입구의 모습.

하나야시키에서 남서쪽, 도쿄의 남쪽에 위치한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横浜市)에도 하나야시키와 비슷한 사연을 지닌 장소가 있습니다. 줄여서 '코스모월드'(コスモワールド)라고 많이 부르는 '요코하마 코스모월드'(よこはまコスモワールド)는 이 도시의 항구에 위치한 수많은 오락 시설 중 한 곳입니다. 열차가 물속으로 퐁당 빠져버리는 것 같은 특이한 비주얼의 '다이빙코스터 "배니시!"'(ダイビングコースター「バニッシュ!」)와 일본의 개항기를 상징하는 '대관람차 "코스모클락"'(大観覧車「コスモクロック」)을 보유한 코스모월드는, 인기 만화·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 《눈동자 속의 암살자》(瞳の中の暗殺者)《탐정들의 레퀴엠》(探偵たちの鎮魂歌)의 실제 작화 로케이션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다이빙코스터 "배니시!"'의 실제 모습과, 《눈동자 속의 암살자》에 등장한 모습(© 青山剛昌 / 名探偵コナン製作委員会).
'대관람차 "코스모클락"'의 실제 모습과, 《탐정들의 레퀴엠》에 등장한 모습(© 青山剛昌 / 名探偵コナン製作委員会).

 

요코하마의 도심·임해 지역을 도심임해부재생 프로젝트의 구분에 따라 구역을 나누어 본 지도와, 새롭게 지어진 '오산바시 부두 공원'의 풍경.

마치 테트리스마냥 좁은 공간에 다양한 놀이시설을 조립해 넣은 극도로 공간집약적인 코스모월드의 모습은 이 유원지가 위치한 요코하마항 일대의 성질을 그대로 함축해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코스모월드가 위치한 '요코하마 도심·임해 지역'(横浜都心・臨海地域)은 시의 '도심임해부재생'(都心臨海部再生) 프로젝트를 통해 보다 활기찬 문화·상업공간으로 변신하는 중입니다. 이 구역은 크게 다섯 구간으로 나뉘는데, 가장 남쪽부터, 앞으로의 개발이 가장 기대되는 '야마시타부두 주변 지구'(山下ふ頭周辺地区), 근대 유적지 사이로 펼쳐진 아름다운 공원과 다양한 상점가 및 차이나타운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지닌 '칸나이·칸가이 지구'(関内・関外地区), 요코하마항의 랜드마크인 드높은 마천루와 다양한 관광 및 오락 시설이 즐비한 핵심 중의 핵심 '미나토미라이21 지구'(みなとみらい21地区), 철도 및 고속버스 등 가나가와현 교통의 중심지 '요코하마역 주변 지구'(横浜駅周辺地区), 간토의 무역과 경제의 주축 중 한 곳인 '히가시가나가와 임해부 주변 지구'(東神奈川臨海部周辺地区)가 있습니다. 특히나 미나토미라이21은 일본어로 "항구의 미래 21"이라는 뜻으로, 요코하마시가 이곳을 어떻게 키우려고 하는지 그 포부가 명칭에서도 읽히는 장소입니다.

 

지진으로 황폐화된 요코하마의 항구를 찍은 사진(© Yokohama Archives of History.)과, 마천루와 다양한 놀이 시설이 들어선 오늘날의 요코하마 해안가의 모습.

사실 이 일대도 간토대지진 당시 아주 큰 피해를 입었던 지역입니다. 지진으로 요코하마의 해안 지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해당 부분을 간척지로 새롭게 꾸리면서 조성한 것이 지금의 요코하마 도심·임해 지역입니다. 일본의 내각통계국이 1930년에 실시한 국세조사 결과에 의하면 요코하마가 속해 있는 가나가와현에서 1만3천355명이 학살되었고, 요시노 사쿠조가 1923년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요코하마에서 최소 1천40명이 희생 당했다고 합니다. 요코하마 도심·임해 지역과 같이 강이나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희생자들을 밧줄로 한데 묶어 강이나 바다에 던져 익사 시키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한밤중에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조깅을 하던 중, "첨벙" 그리고 "어푸어푸", 사람이 바다에 빠져 버둥 거리는 급박한 소리를 듣고 황급히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뛰어가보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끔찍한 얼굴로 웃고 있는 수살귀였다는 등, 요코하마 코스모월드를 포함해 도심·임해 지역의 괴담 중에는 유독 물귀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사쿠사와 미나토미라이21은 보존하고 널리 알려야 할 근대 유산과, 잊지 말고 또 절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참극을 모두 안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멸시, 공격, 그리고 범죄가 들끓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2020년대야말로 하나야시키와 코스모월드의 참극이 주는 교훈이 꼭 필요한 시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웃음만이 가득해야 할 놀이공원의 뒤에 숨겨진 집단의 광기와 배타주의가 낳은 비극을 꼭 기억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가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납량특집으로 전해드린 "괴담과 유산"의 첫 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혀기네카페의 알고 타야 더 맛있는 롤코라떼의 납량특집, 다음 Ⅱ부에서는 도쿄에 있는 또 다른 오래된 유원지인 토시마엔의 괴담과 유산에 관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Ⅱ부 열차 바로 들어옵니다. 안전선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