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1. 13:00ㆍ테마 파크 비평
–機術의 限界가 藝術의 形式이 되다–
얼핏 보면 기술이 일방적으로 예술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발전하는 것 같지만, 실은 기술과 예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대표적인 분야가 음악이며, 오늘날 대중음악 한 곡의 길이가 3~4분대라는 점은 과거 레코드판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 레코드판에 담을 수 있는 분량이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또한, "싱글"과 "앨범"은 물론이고, "B-Track(수록곡)"과 "EP"라는 표현 역시, 레코드판 세대에 탄생한 표현이, 카세트테이프와 CD 세대를 거쳐 디지털 음원 세대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술과 기술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술의 한계가 예술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때 말하는 기술에는 단순히 기술력의 범위뿐이 아니라 효용성 역시 포함된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시장에서 효용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보급되지 못하면 사장되기 십상이기에, 효용성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규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롤러코스터의 발전 과정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인 듯하다. 스위스계 기업인 볼리거 & 마비야르 (Bolliger & Mabillard, 이하 "B&M") 사는 강력한 비주얼 쇼크를 제공하고 특유의 안정감이 있는 롤러코스터로 유명하다. 여러 롤러코스터 중에서도 B&M 사의 역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다이빙 코스터 (Dive Coaster)이다. 다이빙 코스터는 비이클을 높고 가파른 체인 리프트힐 위로 빠른 속도로 올려놓은 후, 평평하고 제법 긴 리프트힐의 정상을 천천히 지나, 수직 혹은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비이클을 낙하시킨다. 낙하시키기 직전 비이클을 아찔한 각도에 몇 초간 대롱대롱 메달아 놓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제법 신선한 물리적 경험을 선사하는 다이빙 코스터는 B&M 사의 야심작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매상이 지명도를 따라가지는 못 하였다. B&M 사가 다이빙 코스터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1998년 이후로 이십여 년이나 지났으나, 현재까지 건설된 것은 열다섯 개에 그치고 있다. 처음 등장한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기는 하나 딱 거기까지였다는 것, 즉 기술의 효용성이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다이빙 코스터는 롤러코스터의 새로운 한 분야를 개척하여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다이빙 코스터의 한계는 무엇이었고, 이것이 훗날 어떠한 예술적 장으로 승화되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Ⅰ. 인상적이기만 했던 첫 등장
〖오블리비언〗
OBLIVION
최초의 다이빙 코스터는 1998년 3월 영국 잉글랜드 스태포드셔 '알턴 타워 리조트' (Alton Towers Resort) 내에 위치한 '알턴 타워' (Alton Towers) 파크의 '엑스 섹터' (X-Sector) 구역에서 문을 연 '오블리비언'이었다. 당시의 예산은 약 1,200만 파운드로 한화로는 약 약 180억 원이라는 돈이 들었다. 트랙 길이 약 372.5 미터, 최고 높이 약 19.8 미터, 최대 시속 약 109.4 킬로미터, G 포스는 약 4.5G, 최대 낙하 경사 약 87.5 도라는 스펙을 자랑했다. 140 센티미터 이상이 탑승 가능하다는 신장 제한이 있기도 하다. 최고 높이는 약 19.8 미터였지만, 트랙이 지하로도 이어졌기 때문에 최대 낙차는 약 54.9 미터에 달했다. 비히클로는 총 16인승의 1열 2량 열차가 일곱 대 편성되었다. 어둠으로 향하는 위험한 놀이기구를 지향점으로 삼은 오블리비언은, 큐라인에서 (파크 내의 다른 대형 롤러코스터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한 후에 삭제되었지만) 파크의 롤러코스터를 대표하는 두 캐릭터가 과연 오블리비언이 안전한 놀이기구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였다. 즉, 최초의 다이빙 코스터는 스릴감으로 대변되는 물리적인 자극 자체보다도 불안감 등 정서적인 공포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오블리비언은 50 미터가 넘는 전체 다이빙 구간의 반 이상을 어두운 지하 터널에 감추고, 지하 터널의 입구를 미스트로 감추었다. 지하 터널의 입구 주변으로는 뷰 포인트를 마련해 탑승자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이를 지켜보는 이들도 긴장하게끔 하였다. 문제는 이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오블리비언의 탑승 시간은 약 1분 15초로, 리프트힐을 따라 올라가고 다이빙 구간의 시작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시간과 주행을 마친 후 브레이크가 걸리고 스테이션으로 복귀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빠르게 내달리는 시간은 15초 남짓이다. 오로지, 그리고 오롯이 다이빙 구간과 지하 터널을 위해 설계된 롤러코스터였다. 이것이 다이빙 코스터의 전부였고 정체성이었다. 때문에 다이빙 구간을 다른 요소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변형을 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파크에서도 다이빙 코스터를 유치한다고 한들 오블리비언만큼 주목받지는 못한 것이 뻔하였다. 이것이 패착이었다.
〖하늘을 나는 잠수함〗
DIVING MACHINE G5
飛天潛艇 G5
두 번째 다이빙 코스터가 만들어지기까지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다이빙 코스터는 2000년 3월 대만 윈린현 구컹향 '젠후산 팬시월드' (Janfusun Fancyworld / 劍湖山世界主題樂園)의 '스카이 플라자' (Janfusun Sky Plaza / 摩天樂園) 구역에서 '하늘을 나는 잠수함'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을 시작하였다. 하늘을 나는 잠수함은 절벽의 비탈을 따라 설치된 최초이자 현존하는 유일한 테레인(Terrain) 다이빙 코스터이다. 이름처럼 절벽 위를 나는 잠수함을 표방하지만, 컨셉을 살리기 위한 이름 외의 다른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트랙의 레이아웃만 보자면 오블리비언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코스터이기 때문에 물리적 스펙에 큰 차이는 없으나, 트랙 길이가 약 381 미터, 최대 낙차는 약 54.6 미터, 최대 시속 약 109.9 킬로미터, G 포스는 약 5.0G라는 점, 그리고 비히클이 총 여섯 대가 편성되었다는 점 등의 미세한 차이는 있다. 지형을 활용한 하늘을 나는 잠수함의 다이빙 구간은 절벽 면을 따라 낙하하는 듯이 연출되었고, 지하 터널은 다이빙 구간의 끝부분에 아주 잠깐 등장한다. 이로 인하여 지하 터널의 비중이 크게 줄었으나 리프트힐의 정상에서 지하 터널의 입구까지의 낙하 거리와 지면과 레일 사이의 높이차는 상당히 증가하였다. 오블리비언이 한 치 앞도 모를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불안감을 조성한다면, 하늘을 나는 잠수함은 보다 구체적인 시각적 스릴감을 선사하였다.
Ⅱ. 무작정 진행한 대형화
〖시크라〗
SheiKra
하늘을 나는 잠수함 이후 세 번째 다이빙 코스터가 탄생하는데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세 번째 다이빙 코스터는 2005년 5월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 있는 '부쉬 가든 탬파' (Busch Gardens Tampa)의 '스탠리빌' (Stanleyville) 구역에 설치된 '시크라'로, 5년이라는 기간은 다이빙 코스터에 대한 파크 산업체들의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시선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다이빙 코스터의 계보를 이어가기까지 5년이나 소요된 시크라는 이전의 두 다이빙 코스터와는 그 면모가 완전히 달랐다. 다이빙 구간의 경사각은 기존의 약 87.5 도에서 90 도로 완전한 수직 낙하로 변하였고, 다이빙 구간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 지하 터널은 비교적 낮고 낙차가 적은 두 번째 구간에만 사용되었고, 첫 번째 구간은 완전히 지상으로 올라오고 레일을 가리는 구조물이 전혀 없어, 높이가 무려 약 61 미터에 달하는 첫 번째 구간의 기다란 낙하 구간이 그대로 공개되었다. 첫 다이빙 구간 직후에는 임멜만이라는 상하역전(Inversion)형 특수 트랙이 도입되어 스케일을 더하였다. 또한, 비히클의 밑면에 용골을 설치하고, 비히클이 스테이션으로 복귀하기 직전 물 위를 스쳐 지나가도록 하여, 물보라가 일어나도록 한 스플래시 이펙트 구간을 두어 스펙터클도 추가하였다. 트랙 길이는 약 971.7 미터로, 탑승 시간도 약 2분 20초로, 최대 시속 약 112.7 킬로미터로, 크게 증가하였다. 비히클 역시 총 24인승의 1열 3량 열차 다섯 대를 편성하여, 대수를 제외하고는 스펙이 증가하였다. 다만, 유럽보다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미국 안정 규정에 따라 신장제한은 137 센티미터 이상으로 조금 하향되었다. 최고 높이가 약 61 미터까지 올라가며 이로써 다이빙 코스터도 하이퍼 코스터의 반열에 올랐다. 공포 심리를 다루던 오블리비언과 달리, 대형화를 이룬 시크라에 이르러 다이빙 코스터는 덩치 싸움에 참전한 것이다. 시크라의 예산으로는 약 1,350만 미국 달러, 한화로 약 162억 원이 들었다. 오블리비언보다는 적은 금액이기는 하나, 오블리비언에는 기술력 연구비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크라는 대형화만큼 건설비는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오블리비언은 좋은 아이디어였으나, 딱히 이어나갈 껀덕지가 없었고, 예산이 적어 속칭 가성비가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태생적으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코스터였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다이빙 코스터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덩치 싸움이라는 당시의 시류에 따르기라고 해야 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 롤러코스터의 "SheiKra"라는 철자를 보고, "세이크라" 내지는 "셰이크라"나 "쉐이크라"라고 하는 사람이 간혹 있으나, 옳은 표현은 "시크라"(/ʃɪkɹə/)이다. 수릿과 조류인 시크라(Shikra)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시크라라는 새는 나뭇가지 등에 앉아 주변을 살피다가 먹잇감을 포착한 후 낙하하듯 날아들어 먹이를 잽싸게 낚아채는 식으로 사냥을 한다고 한다. 즉 롤러코스터 시크라는 먹이를 노리는 수리의 고공 수직 강하라고 볼 수 있다.
〖그리폰〗
GRIFFON
네 번째 롤러코스터는 2년 후인 2007년 5월에 운영을 시작하였다.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즈버스의 '부쉬 가든 윌리엄즈버스' (Busch Gardens Williamsburg) 내 '프랑스' (France) 구역에 위치하며, 이름은 그리핀을 지칭하는 프랑스어 '그리폰'이다. 프랑스의 상공을 가르는 그리핀인 것이다. 사실상 시크라를 발주하였던 부쉬 가든 프랜차이즈가 재구매를 해 준 것이다. 다이빙 코스터의 스케일은 그리폰에 이르러 더더욱 거대해져서, 트랙의 전장이 약 947.3 미터, 탑승 시간은 약 3분, 최고 높이 약 62.5 미터, 최대 시속은 무려 약 114.3 킬로미터까지 증가하였다. 비히클의 규모도 더 커져서 총 30인승의 1열 3량 열차가 세 대 편성되었고, 총제작비로 약 1,560만 미국 달러, 약 187억 원이 투자되었다. 임멜만이 첫 다이빙 구간뿐 아니라 두 번째 구간에도 더해지며 물리적인 스릴을 더했고, 지하 터널이 다시 첫 번째 구간으로 이동하긴 하였으나 긴 터널이 아닌 굴다리 하나를 지나는 정도이기에 거대한 수직 낙하 구간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 것은 여전했다. 비히클로도 다이빙 코스터 최초로 바닥이 없는 플로어리스 차량이 도입되어 스릴을 배가하였고, 같은 해의 바로 다음 달인 6월에는 기존 시크라의 비히클 역시 플로어리스로 교체되며 다이빙 코스터의 스펙 강화에 일조하였다. 그리폰도 시크라도 모두 씨월드 파크 & 리조트 계열의 파크에서 구입한 것이기에 기존 구매자의 재구매가 이루어진 것으로 할 수 있으나, 이것이 B&M 사에게 긍정적이기만 한 신호는 아니었다. 씨월드가 다이빙 코스터를 재구매한 2년 동안 신규 구매자는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블리비언에서 그리폰으로 변화하면서 다이빙 코스터에는 기발함은 사라지고 큰 덩치만이 남게 되었으나, 180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는 그리폰보다도 고 스펙의 초대형 롤러코스터를 설치할 수 있었기에 파크 산업체 입장에서는 효용성이 많이 떨어졌다. '베코마' (Vekoma) 사의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 코스터를 이와 유사한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플라잉 더치맨 이전까지 '플라잉 코스터' (Flying Coaster)는 1인승 비히클을 사용하는 중소형 롤러코스터였고, 베코마 사가 2001년에 배트윙을 선보이며 이를 대형화하며 붙은 모델명이 플라잉 더치맨이었다. 플라잉 더치맨은 분명 혁신적인 롤러코스터였다. 바로 다음 해인 2002년 B&M 사가 에어(현재 명칭 "갤럭티카")를 선보이며 대형 플라잉 코스터 시장에 진입하였고, 파크 산업체들은 M&B의 플라잉 코스터를 효용성 측면에서 더욱 높게 평가하여 주도권은 결국 베코마 사가 아닌 B&M 사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베코마 사의 플라잉 더치맨은 현재 배트맨 단 하나만을 남기고 전부 철거되거나 운영이 종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형화된 플라잉 코스터 시장의 가성비라는 틈새를 노린 '잠페를라'(Zamperla) 사에게도 영업 실적에서 순위를 내주고 말았다. 베코마 사는 올해(2020) 말 독일 판타지아란트에서 F.L.Y.라는 보다 더욱 발전한 형태의 대형 플라잉 코스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F.L.Y.가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나, 베코마 사가 플라잉 코스터 시장에 다시 명함을 내밀기까지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점으로 미루어, 제아무리 큰 덩치와 첨단 기술을 좋아하는 롤러코스터 업계라고 해도 효용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다이브 코스터〗
DIVE COASTER
垂直过山车
불안은 현실이 되어, 다이빙 코스터는 또다시 암흑기에 접어들고 말았다. 그리폰 이후로 중국을 제외하면 다이빙 코스터는 3년 동안 설치되지 않았다. 그리폰이 문을 연 다음 해인 2008년 1월,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의 '참롱 패러다이스' (Chimelong Paradise / 长隆欢乐世界) '레인보우 베이' (Rainbow Bay / 彩虹湾) 구역에 다섯 번째 다이빙 코스터가 설치되었다. 무지개 만으로의 다이빙 정도로 보아야 할까, 다섯 번째 다이빙 코스터의 이름은 아주 정직하게 '다이브 코스터'가 되었다. 다시 두 번째 다이빙 구간으로 이동한 지하 터널은 그 길이가 제법 길어졌고, 임멜만은 첫 번째 다이빙 구간 뒤에만 설치되었지만 여전히 어마 무시한 덩치를 자랑하였다. 트랙의 전장이 약 981 미터, 탑승 시간은 약 2분, 최고 높이 약 60 미터, 최대 시속 약 112 킬로미터, G 포스는 약 4.4G로 , 일부 스펙은 그리폰보다도 상향되었습니다. 신장 제한 역시 중국의 기준에 맞추어 140 센티미터 이상으로 조정되었다. 비히클로는 그리폰과 동일한 열차가 두 대 편성되었다.
〖다이빙 코스터〗
DIVING COASTER
绝顶雄风
다음 해인 2009년 8월, 중국 상하이시 쑹장구에 위치한 '상하이 해피 밸리' (Shanghai Happy Valley / 上海欢乐谷)가 '상하이 비치' (Shanghai Beach / 上海滩) 구역에 기성의 시크라 모델의 다이빙 코스터를 설치하여, '다이빙 코스터'라는 정직한 이름을 붙여서 운영하였고, 상하이 비치가 근대초를 컨셉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통해 20세기 초 개화기의 상하이에 들어온 충격적인 신문물 정도로 컨셉을 부여해 볼 수 있겠다. 트랙 길이 약 972 미터, 최고 높이 약 64.9 미터, 최대 시속 약 110 킬로미터라는 아주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 시크라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신장 제한만 중국의 기준에 따라 140 센티미터 이상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 어디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이빙 코스터는 상하이 해피 밸리 이후 약 10년 동안 중국 시장에서 판매 실적을 전혀 올리지 못한다. 이전에도 오블리비언보다 가파른 롤러코스터는 존재하였지만 모두 런치 방식의 셔틀 형식이었기에, 리프트힐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완전 순환식 롤러코스터인 오블리비언에 상당한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오블리비언의 등장 후 완전히 순환하는 레이아웃을 지닌 수직 낙하 롤러코스터는 제법 흔해졌으며, 밀레니엄 이후로는 100 도를 넘는 것도 드물지 않게 공개되었다. 게다가 다이빙 구간이 전부이자 정체성이었던 오블리비언과 달리, 이들 롤러코스터에게 수직 낙하 구간은 한 가지 요소일 뿐이기에 이후로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물론 다이빙 코스터도 더 각도가 크고 더 높은 다이빙 구간으로 무장한다면 더더욱 파격적인 롤러코스터가 될 수 있었겠으나, 롤러코스터 시장에서 스펙 싸움은 끝도 없고 효용성 역시 족쇄가 되어, 그렇다 할 해결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발하지만 단발적인 참신함과, 파이퍼 코스터로 진화하는 줄 알았지만 효용성에서 밀리며, 어중이떠중이가 되어 이도 저도 아닌 포지션에 놓이고 만 것이다. 사실 다이빙 코스터 이전에도 초반에만 주목을 받고 반짝 인기 이후 금방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만 롤러코스터가 제법 있다. 이들 롤러코스터에게는 기발하였으나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쉽게 말해서, 지금은 재밌으나 앞으로는 글쎄 의문이 드는 경우이다. 이러한 사례의 대표주자로, '울트라 트위스터' (Ultra Twister / ウルトラ・ツイスター)라는 별명을 지녔던 옛 '토고'(Togo / トーゴ) 사의 '파이프라인' (Pipeline) 코스터가 있었다. 토고 사는 파이프라인 코스터라는 아주 새로운 롤러코스터 장르를 개발해냈는데, 이는 비히클이 레일의 위도 아래도 아닌 레일과 레일의 사이에 끼어 있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구간에서는 레일과 라일을 원형으로 엮어 마치 비히클이 둥그런 파이프 안쪽을 따라 이동하는 것 같이 생겼다고 하여 파이프라인 코스터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독창적인 외관과 금액적 공간적 가성비가 좋았기에 초기에는 세계 각지에 설치되었으나, 개선하고 변형을 주고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 딱히 없었다. 토고 사가 제정적으로 힘들어졌을 때 파이프라인 코스터를 인수하겠다는 회사는 등장하지 않았고, 결국 토고 사가 문을 닫으며 파이프라인 코스터도 함께 사장되고 말았다. 다이빙 코스터 또한 어떻게 여기까지 10년을 버티기는 하였으나,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아 보였다.
Ⅲ. 테밍과 정체성
〖크라크〗
KRAKE
오늘날 다이빙 코스터는 테밍을 하기 좋고 컨셉과 스토리가 확실한 롤러코스터 장르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러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20년이 넘는 되는 다이빙 코스터의 역사 중 1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의 일이다. 2011년 4월, 독일 니더작슨주 졸타우 소재의 '하이드 파크 리조트' (Heide Park Resort) 내 '하이드 파크' (Heide Park)의 '트란실바니아' (Transsilvanien) 구역에 일곱 번째 다이빙 코스터가 들어오며 이윽고 다이빙 코스터의 역사에도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놀랍게도, 트랙의 전장은 약 476 미터, 탑승 시간은 약 2분, 최고 높이가 약 41 미터, 최대 시속은 약 103 킬로미터로, 스펙이 전반적으로 크게 줄었고, 다이빙 구간의 낙하각 역시 87 도로 하향 조정되었다. 비히클 역시 총 18인승의 3열 3량 열차 세 대로 대당 수용력이 줄어들었다. 신장 제한만이 유럽의 기준에 따라 140 센티미터 이상으로 숫자가 커졌다. 시크라와 그리폰 세대와는 정반대로, B&M 사가 다이빙 코스터의 스케일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것이다. 덩치 싸움에서는 물러난 B&M 사가 꺼내 든 새로운 승부수는 바로 테밍(Theming: 놀이시설의 테마를 구체화하여 표현하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수치 대신, 명확한 컨셉과 고유의 스토리를 더하여 개성을 살리는 것이다. 이전의 다이빙 코스터가 그렇다 할 스토리 없이 그저 다이빙 구간의 특이한 외형을 보고 적당한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과 달리, 크라크는 확실한 컨셉과 스토리를 잡았고 이를 위해 테밍을 시도하였다. 지금까지는 다이빙 코스터를 설치 해 놓고 적당한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방식이었지, 다이빙 코스터마다의 그렇다 할 컨셉이나 테밍은 없었습니다. 여섯 번째 다이빙 코스터의 이름은 '크라크'로, 트란실바니아의 항구를 공격하는 전설 속의 괴물 크라켄을 컨셉으로 하여, 설정과 스토리를 구체화하고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더하였다. 크라크의 스테이션은 괴물에게 공격받아 무너진 요새의 형태를 하였다. 다이빙 구간에 터널이 다시 등장했는데, 터널은 크라켄에 의해 파괴된 범선, 터널의 입구는 무시무시한 크라켄의 아가리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또한 스테이션을 제외하면 크라크의 트랙은 모두 물 위에 설치되어 컨셉을 보강해 준다. 레일과 지지대 건설에 드는 비용을 삭감하고, 대신 테밍에 건설하는데 들이는 비용을 줄이고, 줄어든 만큼의 비용은 테밍에 사용하여 코스터의 개성을 살렸다. 크라크의 제작비는 약 1,200만 유로 약 204억 원으로, 액수만 보면 그리폰의 약 187억 원보다는 큰 금액이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그렇지 않다. 예산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보다 자세히 풀어 보도록 하겠다. 그라크의 테밍은 스테이션과 다이빙 구간에 집중되었는데, 덕분에 왜 비히클이 다이빙 즉 수직 낙하를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테밍을 통해 설명하여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
OBLIVION THE BLACK HOLE
이후 여덟 번째 다이빙 코스터가 등장하기까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새로운 다이빙 코스터는 4년이라는 긴 시간에 대한 충분히 보상이 되어 주었다. 비히클 배치는 크라크와 동일하고, 트랙 길이 약 566 미터, 탑승 시간 약 2분, 최고 높이 약 42.5 미터, 최대 시속 약 100 킬로미터, 다이빙 코스터의 낙하 각도는 약 87 도로, 비교적 낮은 스펙이라는 크라크의 특성을 이어갔다. 여덟 번째 다이빙 코스터의 이름은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로 정해졌다. 2015년 3월 이탈리아 베네토주 카스텔누오보델가르다의 '가르다란드 리조트' (Gardaland Resort)에 있는 '가르다란드 파크' (Gardaland Park) 내의 '에리어 오블리비언' (Area Oblivion) 구역에 설치되었는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르다란드가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을 설치하기 위해 에리어 오블리비언이라는 테마 구역을 신설한 것이다. 다이빙 코스터를 위해 새로운 테마 구역이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롤러코스터의 테밍 자체도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이 크라크보다 한층 짙어졌다. 새로운 에리어 오블리비언 구역에는 원내(園內)에 블랙홀이 생기는 불가사의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연구 결과 이는 웜홀과 연결되어 우주를 가로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스토리가 입혀졌다.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의 큐라인은 총 세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야외 대기줄인 1차 큐라인을 지나면, 우주 비행사 트레이닝 센터로 꾸며진 2차 큐라인으로 진입하게 된다. 실내 트레이닝 센터에는 온갖 크기의 수많은 모니터가 설치되어 블랙홀에 얽힌 이야기부터 우주 비행사가 갖추어야 할 능력까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영상의 디테일이 범상치 않다. 이후 3차 큐라인인 구름다리를 거치면 마침내 로켓 발사대에 해당하는 스테이션에 진입하게 된다. 시공간을 왜곡하는 블랙홀로 뛰어드는 우주 미션이라는 스토리는 담은 롤러코스터라고 할 수 있다. 다이빙 구간 끝부분에 위치한 지하 터널은 블랙홀로 표현되었다. 터널의 입구는 블랙홀의 입구로, 블랙홀 주변의 자동차, 급수탑, 풍향계 등 다양한 지물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 몰입감이 배가된다. 지하 터널의 길이는 오블리비언 이후로 가장 길고, 블랙홀이라는 컨셉에 어울리게 굉장히 어둡다. 이 시대에는 다이빙 구간의 길이와 스펙은 줄어들었지만, 다이빙 구간의 개성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지하 터널에서 나온 열차는 임멜만을 지난 후 터널을 한 차례 더 통과하는데, 두 번째 터널 역시 해치(hatch) 형태로 꾸며져 현장감이 배가된다. 규모가 줄어든 만큼 다이빙 구간을 두 번 둘 수는 없지만, 270 도 헬릭스와 하트라인 롤이라는 새로운 특수 트랙을 도입하여 길이감과 재미를 보충하였다. 다만 신장 제한이 140 센티미터 이상 195 센티미터 이하로 다이빙 코스터 중 처음으로 키의 상한선이 생겼다. 테밍 강화를 위하여 다양한 영상이 제작된 만큼 제작비는 크라크에 비해 크게 늘어 약 2,000만 유로, 한화로 약 340억 원이 투자되었다. 그러나 영상 한 편에 드는 제작비를 감안하면 절대로 아주 큰 예산은 아니다.
〖바론 1898〗
BARON 1898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의 등장 이후 가르다란드 파크의 연간 입장객 수는 3 퍼센트 이상 상승하였고, 다른 파크 산업체 역시 이 결과에 주목하였다.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과 동일한 해인 2015년의 7월, 아홉 번째 다이빙 코스터인 '바론 1898'이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주 카츠휘벨 '에프텔링 리조트' (Efteling Resort)의 '에프텔링 파크' (Efteling Park) 안 '어드벤처 렐름' (Ruigrijk) 구역에서 운영을 시작하였다. 여덟 번째에 이어 무려 4개월 만에 새로운 다이빙 코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트랙의 전장은 약 501 미터, 최고 높이와 최대 낙차는 각각 약 30 미터와 약 37.5 미터, 최대 시속은 약 90 킬로미터, 다이빙 구간의 낙하각은 약 87 도로, 역대 다이빙 코스터 중 최저스펙을 기록하였다. 신장 제한 역시 132 센티미터 이상으로 큰 폭으로 낮아졌다. 탑승 시간은 약 2분 10초로 살짝 늘었으나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줄어든 스펙에도 바론 1898은 다이빙 코스터의 명성을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성공한 다이빙 코스터로 불리며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오싹한 비밀이 숨겨진 지하 금광을 테마로 하는 바론 1898은 월트 디즈니 계열 테마 파크의 다크 라이드 타워 오브 테러 시리즈가 연상될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이 돋보인다. 에프텔링은 동화, 신화, 전설, 현대의 그림책과 만화 등 유럽의 다양한 이야기 자산을 다루는 테마 파크로, 바론 1898에도 유럽의 다양한 옛이야기 속 요소를 차용하였다. 바론 1898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구스타프 호드무트라는 남작(男爵, Baron)이 있다. 호드무트(Hoodmoed)는 네덜란드어로 휴브리스(Hubris)라는 문학 용어를 의미하는데, 휴브리스란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여 오만함과 독단적인 태도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 것을 의미하며, 문학 비평에서 비극적 인물의 성격적 결함 내지는 과오를 가리키는 하마르티아(Hamartia)의 한 종류이다. 1898년의 어느 날 남작은 황금이 가득한 금광을 발견하나, 금에 손을 대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비테 비벤(Witte Wieven)의 경고를 듣게 된다. 비테 비벤은 유럽의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로, 유럽의 다양한 국가의 옛이야기 속에서 마녀와 여신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며, 바론 1898에서는 소름 끼치는 유령으로 묘사되었다. 남작은 이름값을 하듯이 비테 비벤의 경고에 아랑곳 않고 인부를 고용하여 금광을 개발한다. 그러나 인부들이 비테 비벤을 보고 달아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였다는 것이 기본 스토리이다. 에프텔링은 바론 1898 오픈에 맞추어 기본적인 스토리를 담은 약 13분 정도 길이의 단편 영화를 공개하였다. 그러나 단편을 보지 않았더라도 큐라인에서 스토리를 자세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탑승 대기자는 남작이 새롭게 고용한 인부라는 컨셉으로 1차 큐라인을 지나 남작의 금광 안으로 들어간다. 2차 큐라인은 굉장히 어질러져 지저분하고 음침하기까지 한 인부들의 휴게 공간으로, 이곳에서 탑승 대기자는 금광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비테 비벤과 처음으로 마주하기도 한다. 비테 비벤의 경고를 무시하고 3차 큐라인인 남작의 사무실 내부로 진입하면 남작(의 애니매트로닉스 로봇)과 만나게 된다. 마지막 4차 큐라인을 지나면 드디어 광산 열차의 스테이션이 나온다. 광산 열차에 올라탄 직후 스테이션은 비테 비벤의 습격을 받고, 광산의 관리자는 열차를 밖으로 탈출시킨다. 하지만 비테 비벤의 방해로 인해 열차는 거대한 굴착 크레인(으로 꾸며진 리프트힐)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2차 큐라인부터 리프트힐까지의 공간에서 브뤼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녹음한 주제곡이 흘러나오는 것도 인상적이다. 비테 비벤의 저주를 받은 열차와 탑승자는 머지않아 수직 갱도 안으로 떨어진다. 유골이 가득한 갱도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지상으로 올라온 열차는 임멜만과 제로G 롤 및 360 도 헬릭스 구간을 지나며 공중에서 나뒹굴다가 가까스로 무사히 착지한다. 수직 갱도로 묘사된 지하 터널의 길이와 터널의 입구를 미스트로 가렸다는 점에서 첫 다이빙 코스터인 오블리비언이 연상되기도 한다. 기존의 다이빙 코스터에서는 리프트힐의 정상이 약 90 도의 커브길로 이루어졌던 것과 달리, 굴착 크레인의 형태를 하고 있는 바론 1898의 리프트힐은 커브 길 없이 바로 다이빙 구간으로 넘어간다는 점에서도 B&M 사와 에프텔링이 테밍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바론 1898은 스펙은 최소화하는 대신 스토리에 최선을 다했고, 가장 짧지만 가장 개성 있는 다이빙 코스터가 되었다. 바론 1898의 대성공 덕분에 다이빙 코스터는 테마 파크 어트랙션만큼이나 수준 높은 테밍이 가능한 어뮤즈먼트 라이드라는 새로운 궤도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바론 1898의 총제작비는 약 1,800만 유로로, 이는 약 306억 원에 해당한다.
Ⅳ. 다이빙 코스터의 성숙기
〖밸라븐〗
(발레이븐)
VALRAVN
다이빙 코스터의 인지도가 오른 덕에 바론 1898의 데뷔 후 1년 만에 열 번째 다이빙 코스터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앞선 5년 동안 다이빙 코스터가 스펙을 낮추고 테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하긴 하였으나, 물리적 스펙이 대단한 다이빙 코스터를 원하는 어뮤즈먼트 파크도 있었다. 수요가 일정해지고 제품군 내의 옵션이 다양해진 것으로, 이 시기에 다이빙 코스터가 성숙기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5월 미국 오하이오주 샌더스키 소재의 '시더 포인트' (Cedar Point) 리조트 시설 내 파크의 '메인 미드웨이' (Main Midway) 구역에서는 '밸라븐'이라는 새로운 롤러코스터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밸라븐은 트랙 길이가 약 1,040.9 미터, 탑승 시간 약 2분 23초, 최고 높이와 최대 낙차가 각각 약 68 미터와 약 65.2 미터, 최대 시속은 약 120.7 킬로미터로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였으며, 다이빙 구간의 최대 경사각 역시 직각인 90 도로 회귀하였다. 두 번째 다이빙 구간이 부활하였고, 터널은 또 생략되며 웅장한 체격을 자랑스럽게 뽐냈다. 첫 다이빙 구간 뒤로는 임멜만이, 두 번째 구간 뒤로는 다이브 루프와 제로G 롤이 이어진다. 특수 트랙도 보다 다양해진 것이다. 다만, 테밍과 스토리는 다시 사라졌다. 거의 제로에 가깝게 삭제되었다. 앞 장에서 잠깐 언급하고 지나갔던 비용과 인플레이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자면, 밸라븐의 총제작비는 약 2,000만 미국 달러로, 약 240억 원에 해당한다. 크라크의 약 204억 원과 비교하면 테밍에 돈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규모를 키우느라 약 40억 원이 더 소요된 것이다. 테마 파크 어트랙션 수준의 테밍을 자랑했던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과 바론 1898의 총예산은 각각 약 340억 원과 약 306억 원인데, 테마 파크형 어트랙션 하나에 150~200억 원 단위로 예산이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밸라븐의 예산 차이가 대략 50~100억 원밖에 되지 않기에, 스펙을 줄임으로서 예산을 얼마나 줄일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앞선 단계의 다이빙 코스터가 규모를 줄임으로서 예산을 어마나 절약할 수 있었고 대신 테밍에 돈을 투자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라이드 파워 중심의 스릴 라이드가 탄탄한 스토리를 지닌 테마 파크형 어트랙션보다 인기와 화제성의 수명이 상당히 짧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 밸라븐이라는 이름은 댄마크의 민담에 등장하는 괴생명체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왕 등 어느 집단의 수장 혹은 기사가 전사하였을 때 시체를 묻어 주지 않으면 까마귀가 시체를 먹고 몸의 반은 까마귀인데 반은 늑대인 괴생명체가 되는데 이것이 밸라븐이라고 한다. 따라서 밸라븐 코스터의 컨셉을 굳이 밝히자면 전사자의 시체를 먹고 자란 까마귀와도 같은 비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롤러코스터에 테밍은 하지 않았다. 이 괴생명체의 이름은 댄마크어이기에 "밸라븐"(/vælrɑvn/)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으나, 미국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이 롤러코스터의 이름을 "발레이븐"(/vɑlreɪvn/)이라고 발음하고 있기에, 이번 포스트에서는 두 가지 명칭을 모두 소개하였다. 밸라븐에는 총 24인승 1열 3량 열차 세 대가 편성되었으며, 신장 제한은 132 센티미터 이상 198 센티미터 이하로 상한선이 있는 두 번째 다이빙 코스터가 되었다.
〖플라잉 압사라〗
FLYING APSARAS IN WESTERN REGION
西域飞天
다음 해인 2017년에는 새로운 다이빙 코스터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2018년에는 전 세계에 무려 세 개의 다이빙 코스터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2018년 2월, 중국 쓰촨성 청두시 소재 '청두 해피 밸리' (Chengdu Happy Valley / 成都欢乐谷)의 '실크로드 오디세이' (Silk Road Odyssey / 丝路传奇) 구역에서 '플라잉 압사라'라는 이름의 다이빙 코스터가 운영을 시작하였다. 세계 열한 번째이자 중국에서는 세 번째 다이빙 코스터로, 탑승 시간 약 2분 40초 최고 높이 약 50 미터, 최대 낙하 경사 약 90 도, 신장 제한 140 센티미터 이상 190 센티미터 이하이다. 지하 터널은 두 번째 다이빙 구간으로 이동했고, 첫 번째 다이빙 구간 직후로는 임멜만이 이어지며, 스플래시 이펙트 구간이 되살아났고, 바로 옆에 위치한 목재 롤러코스터와 트랙이 인터라킹 되기도 한다. 고 스펙 계열에 해당하지만, 십여 년 전에 설치된 중국의 다른 다이빙 코스터에 비하면 테밍에도 나름 돈을 썼다. 압사라는 힌두교에서 비롯되었으며 동남 및 남부 아시아의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물의 요정이자 천녀(天女)이다. 여전히 물리적 스펙 중심이라는 점은 십여 년 전에 설치된 다른 중국의 다이빙 코스터와 같지만, 확실히 이전의 두 코스터에 비해서는 인도 서역길에서 만난 천녀이자 물의 요정인 압사라라는 컨셉을 잡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모입니다. 하늘 위와 수면 위를 오가는 구성과, 하늘을 닮은 청록색 트랙이 인상이다. 안타깝게도, 플라잉 압사라가 문을 연 2018년에 중국의 '찐마 라이드' (Jinma Rides / 中山金马) 사가 다이빙 코스터를 그대로 카피한 '버티컬 롤러코스터' (Vertical Roller Coaster / 垂直过山车)를 공개하여 중국 시장을 빼앗겼다. 해리 밸리와 참롱 패러다이스 정도 되니까 정직하게 M&B 사와 거래를 했지, 중국에서 정직한 파크 산업체가 참롱 패러다이스와 해피 밸리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앞으로 중국에서 구매자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한편, 플라잉 압사라의 비히클로는 총 18인승의 1열 3량 열차가 세 대 편성되었다.
〖드라켄〗
DRAKEN
열두 번째이자 2018년의 두 번째 다이빙 코스터는 바로 5월에 한국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월드 리조트'의 '경주월드 어뮤즈먼트'에서 오픈한 '드라켄'이다. 드라켄은 기존 그리폰 모델의 트랙 레이아웃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스펙은 트랙 길이 약 947 미터, 탑승 시간 약 2분 10초, 최고 높이 약 63 미터, 최대 시속 약 117 킬로미터, 최대 낙하 경사 약 90 도, 편성된 비히클은 총 24인승 1열 3량 열차 두 대로, 그리폰의 스펙과 차이가 아주 미세하다. 드라켄에서는 지하 터널을 두 번 지난다는 것이 특징이다. 경주월드는 한국에는 라이드 파워가 강한 파크가 많지 않다는 점을 잘 포착하여 공략해 냈고, 따라서 드라켄은 테밍보다는 물리적인 스펙과 스릴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졌다. 드라켄만 놓고 보면 전작인 파에톤과 비교했을 때 테밍이 다소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경주월드는 드라켄을 유치하며 '드라켄 밸리'라는 아예 새로운 테마 구역 하나를 만들어 냈다. 드라켄 밸리 구역 전체를 놓고 보면 테밍이 상당히 훌륭하여, 드라켄의 스테이션 파사드, M&D 시설의 외관, 구역의 입구는 가히 역작이라고 할만하다. 드라켄 역시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제한된 예산 안에서 거대한 드래곤을 피해 절대 반지를 지켜 내기 위한 여정이라는 스토리를 부여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음을 느낄 수 있다. 다이빙 구간을 펜리르 산을 향하야 돌진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 역시 재미있으며, 이는 스토리를 통해 다이빙 구간의 개성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먼저 살펴본 다이빙 코스터와 공통분모가 있기도 하다. 드라켄의 총제작비는 약 180억 원으로, 이는 밸라븐에 든 예상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드라켄은 규모가 큰 다이빙 코스터이지만, 커스텀 디자인된 밸라븐과 달리, 이미 설계와 시뮬레이션을 마친 기성작 그리폰을 구입하여 제조와 설치에 드는 비용만 지불하면 되었기에 예산을 크게 줄어들었다. 드라켄 밸리 구역의 총제작비가 약 40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커스텀 디자인을 했다면 전체 예산에서 절반이 넘는 금액을 드라켄에만 들여야 했지만, 기성의 모델을 구입한 덕에 절반 이상의 예산을 테밍에 들일 수 있었다. 드라켄에 드는 비용을 절약한 덕에 드라켄 밸리 구역의 전체적인 테밍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드라켄 역시 물리적 스펙에 드는 비용을 아끼는 것으로, 컨셉과 스토리를 확실히 구축하여 다이빙 구간에 당위성을 더한다는 흐름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드라켄의 신장 제한은 135 센티미터 이상 200 센티미터 이하로, 상한선이 있는 세 번째 다이빙 코스터가 되었다.
〖발키리아〗
VALKYRIA
열세 번째이자 2018년의 마지막 다이빙 코스터는 8월에 공개된 스웨덴 베스트라예탈란드주 예테보리의 '발키리아'이다. 발키리아는 '리세베리' (Liseberg)에 설치되었다. 발키리아의 스펙을 살펴보면 이 시기에 다이빙 코스터가 성숙기에 들었음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트랙의 전장은 약 750 미터, 탑승 시간은 약 2분 10초, 최고 높이와 최대 낙차는 각각 약 47 미터와 약 50 미터, 최대 시속은 약 105 킬로미터와, 이는 스펙에 집중한 다이빙 코스터의 스펙과 테밍에 집중한 다이빙 코스터의 스펙의 중간치에 해당한다. 그러나 비히클로는 총 18인승의 1열 3량 열차 세 대를 편성하여 규모를 줄였다. 다이빙 구간을 오직 한 번만 등장하며, 다이빙 구간의 뒤로는 임멜만과 제로G 롤과 하트라인 롤이라는 새로운 특수 트랙 조합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파크 산업체 측에서 다이빙 코스터를 들이며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폭이 상당히 다양해진 것이다. 발키리아에는 드라켄과 드라켄 밸리와 비슷한 전략이 적용되기도 하였다. 리세베리는 발키리아를 들이며 '신화와 전설' (Myths & Legends) 구역이라는 새로운 테마 구역을 신설하였다. 신화와 전설 구역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하며, 발키리아의 컨셉 역시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용감히 싸운 영웅을 신계로 이끄는 발키리아이다. 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발키리아는 인간계의 훌륭한 전사를 천상계로 인도하여 오딘 수하의 전사로서의 임무를 부여하는 존재의 이름이다. 롤러코스터 발키리아의 스테이션에 건물에는 북유럽의 전통 건축 양식이 대거 차용되었다. 신화 속의 발키리아는 갑옷과 투구 등으로 무장하여 몸을 가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스테이션의 내부 플랫폼에는 오래된 티가 나는 방패로 장식되어 있기도 하다. 신화와 전설 구역 건설에 든 총제작비는 약 2,500만 크로나로, 이는 한화 약 425억 원에 해당한다. 발키리아의 단독 예산은 공개되지 않았다. 425억 원이라는 총제작비에는 발키리아 외에도, 새로운 팬둘럼 플랫 라이드인 로키의 제작비와, 기존의 목재 롤러코스터 발데르의 재(再)테밍 비용, 신화와 전설 구역의 M&D 관련 비용과 기타 편의 시설 설치 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경주월드 드라켄 밸리의 사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드라켄 밸리는 테마 구역을 새롭게 만들어 추가하였지만, 리세베리의 신화와 전설 구역은 기존의 시설물을 철거한 후 그 자리에 새로운 테마 구역을 들였다는 점으로, 따라서 전체 제작비에는 철거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고려했을 때, 발리키아는 커스텀 디자인 다이빙 코스터이지만 제작비가 200억 원을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고, 발키리아 제작비를 절감한 만큼 신화와 전설 구역의 다른 부분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이빙 코스터는 드라켄과 발키리아에 이르러 스펙과 테밍 어느 하나에 몰빵을 하기보다는 둘 사이의 타협점을 찾는 단계에 이르렀다. 또한, 테밍 면에서 보자면 드라켄과 발키리아를 거치며, 다이빙 구간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코스터에 고유성을 더하던 단계에서 더욱 나아가, 설치된 구역의 전체적인 테마를 주도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발키리아의 신장 제한은 132 센티미터 이상이다.
Ⅴ. 장르화 된 롤러코스터의 탈장르화
〖유콘 스트라이커〗
YUKON STRIKER
열네 번째 다이빙 코스터에 들어서 다이빙 코스터는 또 한 번의 파격을 선사하였다. 열네 번째 다이빙 코스터는 바로 다음 해인 2019년 5월에 오픈한 '유콘 스트라이커'로, 캐나다 온타리오주 본 소재의 '캐나다 원더랜드' (Canada's Wonderland) 내 '프런티어 캐나다' (Frontier Canada) 구역에 설치되었다. 롤러코스터에만 약 2,500만 미국 달러, 한화로 약 300억 원이라는 초 거금이 들었다. 트랙 길이는 약 1,104.9 미터에 달했고, 탑승 시간도 약 3분 25초로 역대 최장을 기록했으며, 최고 높이와 최대 낙차도 각각 약 68 미터와 약 74.7 미터에 달했고, 최대 시속은 약 130 킬로미터나 되었다. 다이빙 구간의 낙하각은 당연히 90 도 수직이었고, 다이빙 구간 자체도 다시 두 개로 늘었다. 다이빙 코스터 사상 최고의 스펙을 지닌 것이다. 그러만 유콘 스트라이커에서 눈여겨볼 것은 스펙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펙"만"이 아니다. 오블리비언 더 블랙홀에서 시작하여 발키리아까지 이어진 다이빙 코스터의 테밍 혁명은 유콘 스트라이커에 이르러서는 초대형 다이빙 코스터로까지 이어졌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다. 유콘 스트라이커는 기존의 다이빙 코스터가 지니던 한계를 완전히 깨 버렸다. 필자는 유콘 스트라이커의 홍보 영상이 처음 공개되었던 2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 유콘 스트라이커만을 주제로 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 다루는 것보다 유콘 스트라이커에 관하여 자세히 알고 싶다면 링크를 걸어둔 네이버 블로그의 포스트를 참고 바란다.
캐나다스원더랜드의 신규 다이빙 코스터 '유콘 스트라이커' |
당시 국내·외의 언론들은 유콘 스트라이커의 스펙이 다이빙 코스터 중 역대급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였지만, 정말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이빙 코스터의 탈(脫)장르화였다. 기존의 다이빙 코스터는 다이빙 구간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나머지 모든 것을 다이빙 구간에 맞추어 기획하고 제작하였다. 다이빙 구간 이외의 특수 트랙도 모두 다이빙 구간을 거드는 역할이었고, 아무리 정교하게 테밍 하였다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다이빙 구간에 개성을 더하여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각각의 코스터의 이름 또한 다이빙 구간에 가장 잘 어울리도록 짓는 것이 관습이라면 관습이었다. 테마 파크에 완벽 적응한 크라크부터 바론 1898 세대의 다이빙 코스터라고 하여도 이러한 문법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유콘 스트라이커는 다이빙 코스터에서 다이빙 구간이 다른 요소와 동등한 지위를, 다이빙 구간 이외의 요소가 다이빙 구간과 동등한, 어쩌면 그 이상의 지위를 지닐 수 있다 말하였다. 두 번의 다이빙 구간 뒤에 등장하는 두 번의 지하 터널을 시작으로 더욱 거대해진 임멜만과 처음 도입된 제로G 스톨과 버티컬 루프 그리고 360 도 헬릭스는 기존 다이빙 구간에게 집중되어 있던 비중을 나눠 갖았다. 다이빙 구간을 통하여 정체성을 확립하고 주목을 받아온 다이빙 코스터이기에, 다이빙 구간의 비중을 줄이는 것은 다이빙 코스터의 매력과 정체성을 반감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 거대화된 다이빙 코스터의 규모를 다시 줄일 때도 그랬던 것처럼, 유콘 스트라이커는 여기에 컨셉 상의 당위성을 더하여 당당히 기존 문법에 도전하였다. 다이빙 구간은 물론이고, 유콘 스트라이커의 모든 물리적인 요소는 사실 컨셉과 스토리를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유콘 스트라이커는 함께 오픈된 새로운 테마 구역인 프런티어 캐나다 구역의 스토리를 이끄는 어트랙션이다. 매서운 추위와 거센 물줄기 속 금을 품고 있다는 클론다이드 강과 그 주변의 오지 마을에 금을 노리는 트레저 헌터들이 몰려들어, 서로 금의 주인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하는 동안, 하늘 위에선 검독수리 한 마리가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 프런티어 캐나다 구역의 기본적인 설정으로, 유콘 스트라이커는 혹독한 산지에서 살아남아 금광을 쟁탈하는 자와 하늘에서 그를 지켜보는 독수리를 중심 소재로서 다룬다. 유콘 스트라이커의 정상부에서는 다른 테마 구역의 바위산이 보이고 다이빙 직전에는 파크 중앙의 강이 내려다보이는데, 이는 프런티어 캐나다 구역의 범위를 시각적으로 확장시킨다. 이후 비히클은 상공과 수역, 하늘 위와 땅 부근을 몇 번이고 오가고, 이를 통하여 탑승자는 금광을 노리는 트레저 헌터의 시각과 이들을 주시하는 검독수리의 시점을 번갈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유콘 스트라이커의 홍보 영상에도 이를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상의 초반에는 상공을 비행하는 검독수리의 자취를 따라 롤러코스터의 트랙이 생성되더니, 영상의 후반에는 검독수리가 롤러코스터와 완전히 분리되어 더 높은 하늘로 날아올라 롤러코스터를 내려본다. 거꾸로 말하자면, 처음에는 롤러코스터가 곧 검독수리였지만 나중에는 롤러코스터는 검독수리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다이빙 코스터는 더욱 길어져야만 하고, 왜 다이빙 구간 뒤로 온갖 특수 트랙들을 여럿 붙어야만 하는지, 이전까지의 다이빙 코스터와 유콘 스트라이커를 비교하며 발생하는 이러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의문에 대해, 유콘 스트라이커는 감상적이고 환상적인 대답을 내놓았고, 이 대답이 상당한 당위성을 지닌다. 컨셉과 스토리로 승부수를 띄었다는 점은 바론 1898과 같으나, 기존의 다이빙 코스터 테밍이 이미 존재하는 요소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했다면, 유콘 스트라이커의 테밍은 다이빙 코스터의 확장 가능성과 그 당위성을 제시하는데 이르렀다. 둘 이상의 요소가 결합하는 모습은 파크 산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기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테마 파크와 어뮤즈먼트 파크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목재와 철재의 장점을 합한 하이브리드 코스터의 등장으로 롤러코스터의 장르 간 구분도 모호해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유콘 스트라이커를 이들과 한데 묶을 수 있을까. 하이브리드 코스터는 물론이고, 테마 파크와 어뮤즈먼트 파크의 결합까지도 결국은 기술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길이가 길어진 다이빙 코스터가 아니고서야 유콘 스트라이커의 스토리를 전개해 나갈 방도가 없고, 트레저 헌터와 검독수리의 시점을 오가는 컨셉과 스토리가 빠진다면 유콘 스트라이커는 물리적 스펙을 늘릴 이유가 없어진다. 유콘 스트라이커는 단순히 더하고 합하는 차원을 넘어, 두 요소가 결합 후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도록 한다. 어쩌면 후세에는 유콘 스트라이커는 다이빙 코스터의 장르적 한계가 새로운 예술로 승화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언급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족으로, 유콘 스트라이커에는 총 24인승 1열 3량 열차가 세 대 편성되었고, 신장 제한은 132 센티미터 이상 196 센티미터 이하이다.
〖엠퍼러〗
EMPEROR
마지막 열다섯 번째 다이빙 코스터는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씨월드 샌디에이고' (SeaWorld San Diego)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원래는 올해(2020) 오픈할 예정이었으나 팬데믹 사태로 인하여 예정이 1년 연기되었다. 새로운 다이빙 코스터의 이름은 '엠퍼러'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용감하게 남극의 바닷속을 가르는 황제펭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수생 동물원으로 출발한 씨월드이지만, 범고래 학대 논란을 시작으로 소비자가 더 이상 동물 구경을 즐거워하지 않자, 2010년대부터는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를 중심으로 제공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그러면서도 씨월드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각각의 롤러코스터는 특정 동물에게서 영감을 얻어 제작하여, 동물의 이름을 붙이고 동물이 연상되도록 디자인하고 있다. 엠퍼러에는 약 1,100만 달러, 약 132억 원이라는 다이빙 코스터 사상 역대 최소 예산이다. 트랙의 길이는 약 734.9 미터, 탑승 시간은 약 2분, 최고 높이와 최대 낙차는 약 46.6 미터와 약 43.6 미터, 최대 시속은 약 96.6 킬로미터로, 낙하각이 90 도라는 점을 제외하면 물리적 스펙 역시 가장 귀엽다. 엠퍼러에는 다이빙 코스터 최초로 배럴 롤과 콕스크류가 사용되었는데, 둘 모두 원심력을 극대화하는 동그란 형태가 인상적인 특수 트랙이다. 엠퍼러의 외견은 보기에 참 동그랗다. 물론 다이빙 코스터 자체가 리프트힐과 다이빙 구간을 제외하면 곡선 구간이 지배적이기는 하나, 엠퍼러는 유난히 동그랗고 마치 동그랗게 말아 놓은 실타래를 보는 것 같다. 곡선이 워낙 지배적이다 보니 실타래 안의 리프트힐과 다이빙 구간까지 동그랗게 보인다. 이처럼 엠퍼러는 극한의 곡선미라는 다이빙 코스터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앞으로의 다이빙 코스터가 곡선미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점치는 것은 아니다. 유콘 스트라이커에 성공적으로 제시한, 다이빙 코스터의 형태적 다양성이 소형 다이빙 코스터에도 적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유콘 스트라이커가 제시한 다이빙 코스터의 탈장르화가 소형 다이빙 코스터에서도 가능함을, 엠퍼러가 훌륭하게 증명해 주길 기대해 본다. 만약 실험이 성공적이라면 보다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개성 있는 다이빙 코스터를 만들 수 있게 되어, 보다 많은 파크 산업체가 보다 다채로운 다이빙 코스터를 제작하고자 마음먹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엠퍼러에는 18인승 1열 3량 열차 세 대가 편성되었고, 엠퍼러의 신장 제한은 132 센티미터 이상이 될 예정이다.
B&M 사는 다이빙 코스터에게 총 세 번에 걸친 실험을 했다. 심폐소생을 목적으로 했던 첫 번째 대형화 실험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수년 후에 진행된 두 번째 실험은, 대중음악 씬에서 레코드판의 분량에 맞춰 3분대의 음악을 제작하던 것처럼, 다이빙 코스터가 지닌 태생적 한계 내에서 다이빙 구간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컨셉과 스토리에 집중하는 테밍 실험이었다. 매우 성공적이었던 두 번째 실험 덕에 다이빙 코스터는 다시 태어났고 안정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들 수 있었다. 이후 진행된 세 번째 실험을 통해서는, 기존 SP보다 길이가 긴 EP가 등장하고 EP라는 표현이 디지털 음원 시대에도 여전히 사용되듯, 다이빙 코스터가 지녔던 기존의 장르 법칙에서 탈피하여 다이빙 코스터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블리비언은 분명 재미있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재미는 단발적인 것이었다. B&M 사는 그 한계를 장르화(化)하여 극복하였고, 이제는 다시 탈(脫)장르화를 시도하며 확장시키고자 한다. 다이빙 코스터는 어느 다른 코스터보다도 역동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여 왔다. 한계가 예술의 형식을 낳았다고 할 수 있는 다이빙 코스터가 앞으로는 또 어떤 파격과 신선함을 제공해 줄지 기대하여도 좋을 듯하다.
'테마 파크 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평⟭ 테마 파크, 공유 가치 창출을 생각하다 – Ⅱ부: 미래 세대를 위한 고립 낙원 (0) | 2020.09.15 |
---|---|
⟬비평⟭ 테마 파크, 공유 가치 창출을 생각하다 – Ⅰ부: 조금은 특별한 원더랜드 (0) | 2020.09.14 |
⟬비평⟭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Ⅲ부: 미래 (0) | 2020.08.31 |
⟬비평⟭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Ⅱ부: 현재 (0) | 2020.08.27 |
⟬비평⟭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Ⅰ부: 과거 (0) | 2020.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