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4. 10:58ㆍ테마 파크 비평
테마 파크, 공유 가치 창출을 생각하다
2015년 영국 잉글랜드 웨스턴슈퍼메어에서 굉장히 충격적인 테마 파크가 문을 열었다. 바로 "음산한 땅"이라는 뜻의 디즈멀랜드 (Dismaland)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가짜 성, 그 옆으로 늘어선 난민 캠프, 전복된 호박 마차, 기이하게 일그러진 인어공주, 죽음의 사자가 운전하는 범퍼카, 변기통에서 점프하여 오르는 범고래, 시커먼 흙탕물 속에 빠진 경찰특공대의 차량과 그 위로 설치된 작은 물 미끄럼틀, 익사한 듯 물 위를 떠다니는 인형, 곡예를 부리듯 기이하게 휘어진 대형 트럭 등, 디즈멀랜드는 이곳에서 놀았다가는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충격을 선사하였다. 또한,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이고, 3파운드였던 티켓 가격은 순식간에 10배로 뛰어오른다. 티켓을 구하였다고 전부가 아니다. 입장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삼엄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도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는 캐스트들과, 침울하기 그지없는 안내 방송과 표지판 등 음울한 분위기는 계속된다. 도대체 이러한 괴상한 테마 파크는 누가 만든 것일까? 사실 디즈멀랜드는 그라피티 아트로 유명한 익명 예술가 뱅크시 (Banksy)가 주축이 되고, 예순 명의 현대미술가가 힘을 합하여 제작한 미술 작품이었다. 어뮤즈먼트 파크(놀이공원)가 아닌 "비뮤즈먼트 파크" (bemusement park; 곤혹공원)를 표방한 디즈멀랜드는, 놀이공원이나 유명 문화 콘텐츠와 관련된 아이템을 소재로 하여, 조금씩, 그러나 아주 괴이하게, 비틀었다. 이를 통해 디즈멀랜드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과 수많은 제도적 모순을 꼬집어 냈다. 디즈멀랜드는 8월 21일부터 6주간 운영되며 일간 4천 명이라는 제한된 입장객만을 받았으나 그 파급력은 인터넷을 타고 전 지구로 퍼져나갔다. 디즈멀랜드를 기획한 뱅크시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디즈니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님" (not a swipe at Disney)을 주장하면서, 디즈멀랜드를 "테마 파크가 더 큰 테마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주제로 하는 테마 파크" (it's a theme park whose big theme is theme parks should have bigger themes)라고 소개하였다.
디즈멀랜드가 문을 닫고 2년이 지난 2017년, 뱅크시는 또 하나의 파격을 선보였다. 바로, 뱅크시 자신이 비용을 전액 부담하여 운영 중인 더 월드 오프 호텔 (The Walled Off Hotel)이다. 소박하지만 나름 포인트를 준 이국적인 외관과 상당히 고풍스럽게 꾸며진 라운지와 객실은 뱅크시의 이전 작품과는 결리 달리 하는 것 같다. 더 월드 오프 호텔이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바로 앞에 위치하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우아하게만 보였던 라운지와 식당을 자세히 살펴보면 폭격으로 떨어져 나오기라도 한 것 같은 돌덩이와 콘크리트 덩어리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호텔 내 모든 객실은 유례없는 벽 뷰(壁 view)를 자랑한다. 최고층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분리시키는 거대한 장벽의 기다란 윤곽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침대 위 벽화 속에서는 이스라엘의 군인과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가 베개싸움을 벌이고 있고, 꼬마 아이가 장벽에 하트 모양 구멍을 내고 있다. 벽에는 예술품 대신 감시 카메라와 온갖 무기가 걸려 있고, 아기 천사와 석고 흉상은 각각 산소마스크와 두건으로 입을 가리고 최루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으며, 진열된 미술품도 모두 분쟁의 상흔을 담고 있다. 디즈멀랜드에서 파크 산업이 세상의 더 다양한 문제를 보아줄 것은 요청하였다면, 파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호텔 산업을 소재로 현대 사회의 가장 깊은 갈등의 골 속 한가운데로 돌진하였다.
CSV (Creating Shared Value; 공유 가치 창출)이라는 경영학 용어가 있다. 기업이 사회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은 기존의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동일하나,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요구하는 CSR과 달리, CSV는 기업이 소비자와 사회의 요구에 기반하여 비즈니스적 가치를 창출하여 기업의 경제적 이윤과 사회적 이익을 모두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CSV는 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소재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기에,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기업의 연간 CSV 보고서가 IR 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러쉬, 파타고니아, 네스프레소, 프라이탁의 사례만 보아도 CSV가 얼마나 실전적이고 현명한 방법론인지 알 수 있다. 특히나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에 민감하고 사회적 가치와 정당성을 기준으로 소비를 하는 젊은 Y세대와 Z세대가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CSV은 단순한 봉사 활동이 아닌 기업의 필수 불가결한 비즈니스 모델로 여겨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테마 파크"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월트 디즈니 역시 후대의 미국인에게 전해 주고 싶은 미국의 가치를 늘 염두에 두고 최초의 디즈니랜드를 만들었다. 현대식 테마 파크의 출발점에 이미 CSV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밀레니엄 이후의 파크 산업은 CSV와 가장 거리가 먼 분야 중 하나인 것 같기만 하다. 사회적 문제를 포착하고 공유 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문제에 편승하여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활용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것만 같다. 월트 디즈니가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가치가 디즈니랜드의 테마 그 자체였으나, 오늘날의 테마 파크에서 테마란 오롯이 그리고 오로지 이익 추구를 위한 도구이자 소재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 "테마 파크는 더 큰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theme parks should have bigger themes.) 뱅크시는 디즈니랜드를 비틀어 이렇게 말했지만, 어쩌면 뱅크시의 이러한 발언은 무엇보다도 디즈니랜드스러운, 무엇보다도 테마 파크의 핵심에 가까운 말일지도 모른다. 이번 포스트를 시작으로 총 여섯 개의 포스트에 걸쳐 공유 가치 창출의 최전방에 선 테마 파크와 놀이공원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규모가 작은 곳이 대부분이지만, 덕분에 대형 테마 파크에 비해 진취적일 수 있기에, 앞으로 파크 산업체가 공략하여야 할 CSV 분야와 구축할 수 있는 모델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Ⅰ부
조금은 특별한 원더랜드
분더란트 칼카르
WUNDERLAND KALKAR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칼카르에는 분더란트 칼카르 (Wunderland Kalkar)라는 시설이 있다. "분더란트" (wunderland)란 영어의 "원더랜드" (Wonderland)에 해당하는 독일어 단어이다. 완공을 되었지만 여러 복합적인 문제로 인하여 가동을 할 수 없게 된 원자력 발전소를, 네덜란드의 사업가 헨니 반 데르 모스트 (Hennie van der Most)가 독일 정부로부터 구입하여 놀이공원으로 재탄생시킨 시설이다. 헨니 반 데르 모스트는 냉각탑 내부에 대형 공중 그네를 들여놓고, 외벽에는 클라이밍 코스를 설치하며, 그 주변으로는 용수로를 따라 설치된 로그 플룸과 냉각탑을 바라보는 롤러코스터 등 다양한 가족형 라이드 어트랙션을 추가하였다. 사실 놀이공원 파밀리엔파르크 (Familienpark)는 분더란트 칼카르의 한 부분이며, 분더란트 칼카르는 파밀리엔파르크뿐만 아니라 호텔과 회의실 및 컨벤션 센터까지 포함하는 아주 거대한 리조트이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흉물이자 가장 값비싼 쓰레기가 될 뻔했던 칼카르 원전은, 분더란트 칼카르로 거듭난 후 연간 약 8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인기 관광시설이 되었다. 또한 분더란트 칼카르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클레베 지역의 관광 거점이 되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체르노빌 사건으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을 없애는 일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모건스 원더랜드
MORGAN'S WONDERLAND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위치한 모건스 원더랜드 (Morgan's Wonderland)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공원을 표방한다. 놀이공원 내의 모든 라이드 어트랙션과 쇼 어트랙션의 좌석에는 휠체어석이 충분히 구비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종류의 장애를 지닌 방문객들이 어트랙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모건스 원더랜드를 대표하는 네 명의 히어로 캐릭터 역시 모두 장애를 지닌 아이들로 설정되었다. 모건스 원더랜드를 지은 고든 하트만 (Gorden Hartman)은 인지 및 신체장애를 지닌 딸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딸을 위한 놀이공원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 모건스 원더랜드로 이어졌다고 한다. 모건스 원더랜드는 "나이, 장애, 특별 관리 등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신체 및 경제적으로 구애받지 않고 찾아와 놀 수 있는 안전하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 (To provide a safe, clean and beautiful environment free of physical and economic barriers that all individuals – regardless of age, special need or disability – can come to and enjoy)을 비전으로 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모건스 원더랜드에서는 놀이시설만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을 위한 체육 교실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교습소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으며, 이때 인근의 군 병원과 연계하여 작전중 부상을 입은 군인을 고용하기도 하였다. 2010년에 개장한 후 2012년부터는 도요타 (Toyota) 사의 후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유니버설 원더랜드
UNIVERSAL WONDERLAND
일본 오사카시 고노하나구에 위치한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Universal Studios Japan / ユニバーサル・スタジオ・ジャパン)은 NBC유니버설 사의 계열 파크 중 가장 성공한 파크로 평가받고 있다. 2012년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은 유니버설 원더랜드 (Universal Wonderland / ユニバーサル・ワンダーランド)라는 새로운 테마 구역을 신설하였다. 당시 최고 마케팅 책임자였던 모리오카 츠요시 (森岡 毅)가 가족과 함께 직접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을 방문한 후, 미취학 아동이 소외되어 있음을 느끼고 미취학 아동도 즐길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기획하였다. 유니버설 원더랜드를 제작하며, 어린아이들은 잘 알지 못하는 할리우드 영화 콘텐츠 대신, 스누피와 헬로키티와 쎄써미 스트리트 등 만화와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활용하였다. 당시에는 할리우드 영화를 소재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외적으로 상당한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데에는 계층 구분이 없어야 한다는 모리오카 츠요시는 뚝심 있게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유니버설 원더랜드의 개장 이후 입장객이 전년대비 약 9.7퍼센트 증가하며 공익적 차원에서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 비즈니스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해외의 아동 디자인 전문가 등이 유니버설 원더랜드 구역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여, 색감, 조명, 그림, 파사드 디자인, 화장실과 쓰레기통과 푸드 카트의 높이, 심지어 어트랙션에 탑승하였을 때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까지 모두 미취학 아동의 눈높이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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