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비평] 우리에게 '좋은' 테마파크가 필요합니다. (테마파크의 정의 Ⅲ)

2021. 7. 25. 16:47유튜브 원고/혀기네카페의 롤코라떼

[020][비평] 우리에게 '좋은' 테마파크가 필요합니다. (테마파크의 정의 Ⅲ) 〔7/25〕

 

 

영상으로 보기 :: https://youtu.be/aCowh3p6Llc

 

알고 타야 더 맛있는 롤코라떼, 지금 출발합니다. 안녕하세요, 혀기네카페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테마파크의 정의" 제Ⅲ부, 앞선 Ⅰ부와 Ⅱ부에서는 테마파크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름대로 새롭게 테마파크를 정의해 보았습니다. 이번 Ⅲ부는 "우리에게 '좋은' 테마파크가 필요합니다."라는 주제로 전개됩니다. 열차 출발합니다. It's Coastertime!

 

테마파크가 지닐 수 있는 공익성에 관해 살펴보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테마파크가 판매하는 것을 떠올려보아야 할 것입니다. 테마파크는 무엇을 판매할까요? 롤러코스터? 귀신의 집? 캐릭터 상품? 츄로스? 이러한 상품은 1차적으로 판매하는 것이고, 이 모든 1차 상품을 동원해 궁극적으로 테마파크가 판매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비일상적인 경험"입니다. 제빵사에게는 위생적인 환경에서 몸에 해롭지 않은 재료로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 시공업체에는 재료 빼돌리지 않고 안전한 공법으로 설계도를 충실히 따라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기본적인 직업윤리입니다. 마찬가지로, 비일상적인 경험을 판매하는 테마파크는 무엇보다도 고품질의 비일상적 경험이 가능한 양질의 놀이 공간과 문화를 제공해야 합니다.

 

양질의 비일상적 놀이 공간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 어떻게 공익성을 증진할 수 있을까요? 왜 굳이 "비일상적"이기까지 한 공간이 필요할 것일까요? 짧은 퀴즈 하나를 풀어보겠습니다. 문제 나갑니다.


[문제] 아래 있는 설계도는 어떤 시설물의 평면도일까요?

① 군 막사 ② 교도소 ③ 고등학교 ④ 복도식 아파트


정답은 ③번 "고등학교"입니다. 동일한 문제를 한 번 더 풀어보겠습니다. 이미지만 다르고 문제와 선택지는 위와 동일합니다. 이번엔 몇 번이 정답일까요?

 

정답은 ②번 "교도소"입니다. 사실 첫 문제나 두 번째 문제나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지로 제시되었던 시설물의 설계도를 살펴보면, 모든 설계도가 거의 직선에 가까운 긴 통로를 두고 동일한 크기와 모양의 방들을 늘여 놓은 방식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주거공간도 그렇지요. 복도식이 사라지고 계단식이 대세가 되며 요즘은 매우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실은 트렌드만 아주 조금씩 바뀌었을 뿐 각각의 아파트의 평면도가 서로 다른 공간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어느 동네 무슨 단지 몇 동 몇 호 혹은 몇 평 아파트라는 정보만으로도 우리의 머릿속에선 어떻게 생긴 집인지 쉽게 그려집니다.

 

 

저녁 일곱 시쯤 어느 아파트 한 동을 세로로 갈라보면 모든 층의 모든 가정에서 동일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요. 그리고 그 옆 동을 잘라보아도, 그 옆 동네의 아파트를 잘라보아도 똑같을 것이라고요.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 아래 군시설도, 수감시설도, 주거시설도, 교육시설도, 모두 똑같은 모양새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획일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은 업체들에는 돈도 시간도 절약할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로지 공급자 중심의 생산과 공급이 이루어집니다. 대부분 한국인은 같은 시간에 비슷하게 생긴 구조물 안에서 대부분 비슷한 일과를 하며 살아갑니다. 획일화된 공간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마저 획일화합니다. 우리는 당연한 것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고, 획일화된 공간과 일상을 그것이 본디 그런 당연한 것인 양 착각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획일성이 사업자에게도 독이 되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테마파크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해, 잘 만든, 좋은 테마파크입니다. 테마파크는 비일상성이 커지는 만큼 상품 가치도 커지고, 공급자 중심의 효율적인 공간 구성에 이용자를 맞추려고 했다가는 본전도 뽑지 못합니다. 따라서 테마파크는 직선으로 만들 길을 굳이 곡선으로 만들고, 대형마트에서 사용되는 흔한 공간적 속임수보다는 몇 수를 앞서가는 등, 뻔할 수 있는 공간을 비틀고 뒤집습니다.

 

저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연간회원이었습니다. 어느날은 쥬라기 공원의 기념품샵 앞에서 이런 광경을 보았습니다. 난장판이 된 기념품샵의 한쪽 구석, 그리고 난장판의 주범인 것 같은 공룡, 그 앞에서 공룡과 소통하고 있는 어린아이. 그리고 해리 포터 구역에서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을 부리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는 현지 아이와 너무나도 놀라워하는 한국인 관광객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하루 입장객 중 최소 3할은 연간회원, 그중에서도 지역 주민입니다. 학교나 직장을 일찍 마친 날이나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에 언제든지 즉흥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오락실, 노래방, 디저트 카페, 키즈 카페, 복합 쇼핑몰과 같은 장소인 것입니다. 이런 비일상성을 어릴 적부터 당연하게 누려온 이 지역의 아이들과 달리, 한국의 아이들은 항공권과 숙박비를 지불하고 또 연휴를 낼 여력이 있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만이 이런 비일상성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여력이 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아이들에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의 경험은 이국적이고 진귀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또한 어디까지나 외국의 사고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비일상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테마파크에는 정말 많은 눈속임이 동원됩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눈속임에 취해 황홀경에 빠질 뿐이겠지만, 어릴 적부터 꾸준히 테마파크의 트릭을 접해왔다면, 나이가 들면서 테마파크에 어떻게 비일상성을 만들어내는지 하나 둘 씩 이해하고, 또 어떤 다른 트릭이 있을지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좋은 테마파크는 한 아이의 평생의 친구가 되어 물리적 공간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고, 이 아이가 자라서 우리의 미래 사회에 더욱 다양한 공간을 제시할 것입니다.

 

하지만 테마파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넓은 부지가 필요합니다. 또한, 훌륭한 테마파크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갑니다. 스토리텔링과 아트웍에 능숙한 전문 크리에이터 여럿이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하고 천문학적인 수의 종업원을 고용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응당 지불해야 할 인건비와 이들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재현해내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 수요가 높아도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이 테마파크입니다. 이때문에 테마파크는 미국 중산층의 문화로 출발했습니다. 테마파크가 등장하기 이전에 있었던, 테마파크의 등장에 영향을 끼친 유원 시설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상류층의 문화였고, 해외 유명 테마파크의 높고 높은 입장료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며 테마파크가 지금도 여전히 중산층의 문화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테마파크의 비일상성이 던지는 시공간에 대한 화두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테마파크를 대신하여 우리의 일상에 비일상성을 더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난 Ⅱ부에서 소개했던 테마파크성을 지닌 공간, 즉 테마파크가 아니지만 테마파크의 속성을 일부 지닌 공간입니다.

 

요즘 들어 보다 많은 대중에게 공개된 재미있는 비일상적인 체험이 가능한 상업공간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것을 넘어 대세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비일상성이 다양한 공공시설물에도 여럿 적용되길 바랍니다. 테마파크에서 테마파크성을 추출한 후 한국의 더욱 다양한 공공시설물에 입혀 보고자 노력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안의 다양한 지역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 한국인들의 거대한 담론의 장을 만드는 일이며, 삶에 다양성과 역동성을 더하는 작업이 될 것이고, 이는 기꺼이 세금을 들여서 기대할 수 있는 공익적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는 응당 물리적 공간의 성질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해야 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물리적 요소 중에서도, 우리들의 세상은 시간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기에,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에 대한 재해석 작업 역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물리적 공간과 시간에 관해 성찰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습니다. 획일적인 일상 공간에 변칙을 세우는 테마파크와 테마파크성이 우리 사회의 시공간적 안목을 깨워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좋은 테마파크가 필요합니다."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Ⅳ부에서는 놀이공원이 발달해 온 역사적 과정을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Ⅳ부 열차 바로 들어옵니다. 안전선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해당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의 영상은 일정 문제로 7월 29일에 업로드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