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비평] 테마파크와 테마파크성, 그리고 영화적 주제. (테마파크의 정의 Ⅱ)

2021. 7. 20. 00:10유튜브 원고/혀기네카페의 롤코라떼

[019][비평] 테마파크와 테마파크성, 그리고 영화적 주제. (테마파크의 정의 Ⅱ) 〔7/20〕

 

 

영상으로 보기 :: https://youtu.be/A5SixXOH8LQ

 

알고 타야 더 맛있는 롤코라떼, 지금 출발합니다. 안녕하세요, 혀기네카페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테마파크의 정의"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앞선 Ⅰ부에서는 "테마파크"라는 단어에 대한 지금까지의 정의의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주제공원"이라는 직역에 너무 연연한 것은 아닌지 나름의 문제 제기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 파크를 가리켜 "이것은 테마파크이다."라고 말하며 최초로 테마파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 미루어, 디즈니랜드 파크라는 원형을 살펴 봄을 통해 테마파크를 정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 Ⅱ부 역시 Ⅰ부와 마찬가지로 개념 영상이 아닌 비평 영상으로, 저의 주관적인 견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영상에 고유명사와 개념용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영상 하단의 버튼을 클릭하여 자막과 함께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야기 바로 이어집니다. 탑승 유지! 지금 시작합니다, It's Coastertime!

 

개장 당시의 '디즈니랜드 파크'는 다섯 개 테마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월트 디즈니의 고향인 미주리주의 마르셀린(Marceline)이라는 마을의 모습을 본 뜬 테마 구역이자 현대 초기의 미국을 상징하는 빅토리아 양식 가득한 '메인 스트리트 U.S.A.'(Main Street, U.S.A.),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국인의 모험가 기질을 나타낸 '어드벤처랜드'(Adventureland), 미국의 선구자 정신을 표현한 서부 개척시대 테마의 '프런티어랜드'(Frontierland), 많은 미국인들에게 선조들의 고향이기도 한 유럽의 다양한 동화를 디즈니의 방식으로 재해석 한 '판타지랜드'(Fantasyland), 미국의 자랑인 첨단과학을 소재로 미국의 미래를 그린 '투모로우랜드'(Tomorrowland)가 그것입니다. 이들 구역은 각각이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장소의, 서로 다른 미국의 모습을 묘사하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정신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구역은 그저 예쁘게 꾸며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형물과 건축물이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며, 바닥, 벽, 전단지, 근무자의 복장 등의 세부 요소에 그 비하인드스토리의 퍼즐을 숨겨 놓았습니다. 각각의 테마 구역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테마 구역뿐 아니라 각각의 라이드 및 쇼 어트랙션도 모두 고유의 컨셉과 이야기를 지닙니다. '큐라인'(Queue line)이라 불리는 대기줄은 '프리 쇼'(Pre-show) 구간이라 하여 어트랙션이 지닌 이야기를 예습 가능하고, 실제 어트랙션에 해당하는 '메인 쇼'(Main show)는 체험자가 직접 이야기 속 세상을 헤쳐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퇴장로와 기념품샵은 '포스트 쇼'(Post-show) 구간으로 이야기의 여운을 제공합니다. 디즈니랜드가 탄생하기 직전 할리우드 영화는 황금기를 맞이하였고 또한 월트 디즈니도 영화인이었기 때문에, 사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디즈니의 영화 콘텐츠가 활용되었으며, 모든 어트랙션과 테마 구역은 할리우드 영화의 형식을 재해석하여 3차원 공간으로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제가 방금 테마 구역뿐 아니라 각각의 어트랙션도 모두 고유의 컨셉과 이야기를 지닌다고 했는데요, 반대로 말하면 구역 내의 모든 놀이기구와 편의시설 및 장식물의 이야기가 만나 해당 테마 구역의 테마가 형성됩니다. 나아가 모든 테마 구역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디즈니랜드 전체의 이야기 흐름을 형성하고 파크 전반의 테마를 완성합니다. 디즈니랜드 파크가 등장하기 이전의 놀이공원에는 출입구가 여럿인 경우가 많았지만, 디즈니랜드 파크의 출입구는 단 한 곳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입장객이 동일한 곳에서 입장해 메인 스트리트 U.S.A.를 지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성으로 향하게 됩니다. 결국은 서로 다른 저마다의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모든 입장객의 첫 경험만큼은 통일하여 공원의 테마를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디즈니랜드는 미국의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그 속에서 지켜온 사회적 가치와 앞으로 지켜 나가야 할 가치를 소개하며, 미국의 통시적인 정체성을 재생산합니다. "미국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 그리고 가치관"이 디즈니랜드 파크의 주제이고, 이 주제는 각각의 테마 구역의 주제와 구역 간의 서사적 효용에서 탄생하며, 각 테마 구역의 주제는 구역 내의 모든 구성 요소의 이야기를 통해 생성됩니다.

 

지난 Ⅰ부에서 이야기한 내용이기도 한데, 어떤 명사는 그 명칭이 대상의 속성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테마파크라는 단어도 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지난 Ⅰ부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테마파크는 직역하면 주제공원이지만, 주제가 있다는 점이 테마파크와 다른 물리적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주제가 없는 공원은 없고, 애초에 모든 장소에는 의도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바 즉, 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장 초기 디즈니랜드 파크의 형태를 살펴본 결과를 토대로, 저는 테마파크가 여타 공원들과 구분됨은, 다른 공원의 주제와 달리 테마파크의 주제만이 지니는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특수한 주제를 '영화적 주제'(映畵的主題/Cinematic theme)라고 명명하고자 합니다.

 

'영화적 주제'라는 단어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앞서 디즈니랜드 파크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발달 덕에 탄생할 수 있었고 영화의 원리의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때문에 디즈니랜드 파크 즉 테마파크가 주제를 도출해내는 방식은 영화와 굉장히 흡사합니다. 또한, 주제 그 자체로도 이미 영화와 유사합니다. 영화의 주제는 문학의 주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 수능 공부를 하면서 문학 작품을 정리할 때, 각 작품의 소재는 짧은 단어이지만 주제는 최소 한 문장이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지난 2020학년도 수능에 출제된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과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자전거 도둑》의 소재는 제목 그대로 "자전거 도둑"이지만 주제는 "가족 관계에서 얻어진 유년 시절의 가슴 아픈 상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의 소재도 "바람"이라는 간단한 단어인 것과 달리, 주제는 "현실에 안주하는 자아와 정체된 삶에 대한 성찰"로 상당히 길고 구체적입니다. 테마파크의 주제 역시 한 단어가 아닌 한 문장, 혹은 최소한 술어를 지닌 구절은 되어야 합니다. 유명 인터넷 백과사전의 한국어 페이지에서는 "과거, 미래, 환상의 나라"가, 영어 페이지에서는 "Fairy tales and Disney characters" 즉 "동화와 디즈니의 캐릭터들"이 디즈니랜드 파크의 주제라고 소개하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주제가 아니라 소재에 해당합니다. 또한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할리우드 영화 테마파크"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영화"는 소재이지 주제가 아닙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주제에 관해서는 이후 다른 연작 시리즈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어느 토픽이 영화적 주제가 되기 위해서는, '전개 방법', '표현 방법', '제공 방법', 이 세 가지가 모두 영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소재와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영화적 주제가 반드시 영화를 소재로 삼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디즈니랜드 파크 사례와 마찬가지로, 흔히 훌륭한 테마파크로 언급되는 시설을 살펴보면, 어트랙션을 위시한 테마파크의 모든 시설물은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이들은 함께 하나의 테마 구역의 이야기를 만들며, 또 이들 테마 구역이 한데 모여 전체 테마파크의 서사를 완성하고, 이 서사를 통해 주제가 도출됩니다. 이때 각각의 사연과 이야기는 영화 제작의 기본 원리인 재현모사(模寫/Mimesis)를 통해, 방문자가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시공간의 좌표 상에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화적 주제의 전개 방법입니다. 또한, 동영상의 발명 자체가 아닌, 그것을 대중이 한곳에 모여 관람하는 것을 영화의 시작이자 기원으로 보는 만큼, 테마파크라는 공간도 나만 아는 숨은 명소가 아닌 만인에게 공개된 형태로 제시되어 주제를 전달해야 하며, 이것이 영화적 주제의 표현 방법입니다. 더불어, 권위적이지 않고 오락성이 있다면, 영화적인 제공 방법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주제의 전개 방법, 표현 방법, 제공 방법이 영화적이라면 해당 주제는 영화적 주제라고 할 수 있고, 어느 공원이 영화적 주제를 지닌다면 해당 공원은 테마파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공간이 공원의 형태를 지녀야 한다는 전제는 있겠지요?

 

어떤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대상 자체와 그 대상이 지니는 특수한 속성을 분리시켜 살펴보며, 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것에서도 그 대상의 속성을 찾거나 적용하여 구현해내고자 하곤 합니다. 그 실례로, 현실(Real) 그 자체와는 별도로, 현실성(Reality)이라는 개념을 끌어와서 영화나 소설과 같이 현실이 아닌 픽션을 창작하거나 비평할 때 사용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리얼리티 쇼를 제작할 때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보다는, "현실감"이 부각될 수 있도록 가공하고 편집하는 것도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테마파크에도, 테마파크 자체와 분리하여 살펴볼 수 있는 특정한 속성이 있다면, 그것을 '테마파크성(性)', 영어로 표현하자면 'Themepark-ity,' 혹은 'Themepark-hood'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만약 테마파크가 아닌 장소를 창조하거나 비평할 때에도 테마파크성을 적용할 수 있다면, 그렇다 할 테마파크가 없는 한국에서도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고, 테마파크 문화의 기틀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며, 저는 영화적 주제가 (이에 도움이 되는) 테마파크성의 대표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선유도공원'을 정말 좋아합니다. 국내의 웬만한 자칭 테마파크들보다 선유도공원을 훨씬 좋아합니다. 선유도공원은 "최초의 재활용 생태 공원"이라는 확실한 컨셉과 "모든 것을 허물고 다시 지어올린 것이 아니라 옛 인공의 조형물에 자연을 수혈"한다는 독특한 방법론 및 "서울과 함께 흘러온 한강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한다는 주제, "공원은 길을 따라 만나는 테마 정원들과 공원의 바깥을 돌며 한강과 서울을 바라보는 산책로"라는 체계적인 구성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선유도공원의 주제가 영화적 주제냐고 묻는다면, 전개 방법이 영화적이지 않기에 (주제도) 영화적이지 않고, 따라서 선유도공원은 테마파크가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유도공원 내 각각의 구역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은 영화적 주제와 유사한 면이 있고, 표현 방법과 제공 방법이 영화적이라는 점에서, 선유도공원은 부분적으로 테마파크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필드나 더현대서울과 같이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쇼핑시설도 부분적으로 테마파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문화역서울 284', '문화비축기지', 'N서울타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여러 전시와, 최근 다양한 시설에서 개최된 참여형 전시 중에서는 영화적 주제와 유사한 요소를 지닌 것이 많습니다. 하나의 테마파크를 만드는 일은 아무리 소규모라고 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테마파크의 주요한 특징인 영화적 주제를 이해하고 보다 다양한 시설에 테마파크성을 적용한다면, 우리의 삶의 공간이 보다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테마파크를 정의하는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여러분은 테마파크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으신가요? 다음 Ⅲ부에서는 우리에게 좋은 테마파크와 테마파크성을 지닌 공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논지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Ⅲ부 열차 바로 들어옵니다. 안전선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